"대학수능시험 감독 수준으로" 인사위원장에 권고

지난 6월27일 치러진 경기도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장에서는 황당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감독관이 화장실 출입을 금지한 뒤 시험장 뒤쪽에서 소변봉투를 사용하도록 하고, 여성의 경우 우산으로 가리고 용변을 해결하라고 말해 응시자들이 반발한 것이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이 사건을 직권조사해 지난달 16일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제1부시장에게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 중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응시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에따라 공무원 임용시험을 경기도에 위탁·시행하고 있는 수원시는 도 인사위원회에 제도개선 권고안을 전달했다. 권고내용은 '시험시간 중 화장실 이용과 관련한 기존의 인권침해적 관행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의 수준으로 개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입시험은 보조감독관의 감독 아래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수원시의 요청을 검토한 경기도는 행정자치부와 구두로 개선필요성에 대해 협의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반복돼오던 공무원시험 인권침해규정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공무원 시험 중에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인권침해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경기도, 행자부, 인사혁신처가 각각 다른 의견을 보이며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경기도는 행자부가 전 지자체에 적용되는 공무원시험 운영메뉴얼을 가지고 있고 지자체는 그 지침에 따르는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행자부는 관련 법규정이 없고 지자체에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도 없으므로 시험실시기관의 수장이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자치행정국 관계자는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행자부에 전달했다. 수원시의 권고대로 대입시험 수준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행자부의 말대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개선해 시행하자면 추가인력 등 예산증액이 필요하다.

국가시험을 정부에서 위임받아 시행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요예산에 대한 지원 없이 지자체가 스스로 해결하긴 어렵다. 당장 29일에 있을 국가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도 화장실 이용은 금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행자부는 이 문제에 대해 경기도로부터 공식적인 질의를 받지 못했다며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행자부 지방행정담당자는 "공무원채용시험은 부정행위로 인해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인권문제보다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행자부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자체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어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중으로 지자체와 대책을 협의해 보겠다는 막연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기존 방식 유지 쪽으로 좀더 강경한 입장이다.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담당자는 "이 문제는 인권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인이 시험시간 최대 150분 동안 소변을 못 참는 것은 응시자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 1문제로 당락이 결정되므로 혹시 부정행위가 발생한다면 국가시험의 기틀이 무너진다.

방광증후군 등 지병이 있는 경우 사전에 신청하면 따로 시험장을 마련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수원시 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은 "행자부나 인사혁신처에서 제도개선 의지가 없으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인권침해가 분명함에도 기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전형적 행정편의주의이다."라고 관계 기관을 비난했다.


/양훈철 기자 yang@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