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전찬일의 칸 리포트 결산
▲ 24일 프랑스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윈터 슬립'의 터키 누리 빌제 세일란(왼쪽 두번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미국 여배우 우마 서먼, 영국 배우 티모시 스폴, 미국 극작가 브루스 와그너, 한국 여배우 전도연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더 원더스' 낮은평점에도 심사위원대상

안타까운 무관 영화는 아프리카 '팀북투'

대륙별·감독 연령별 안배 수상 골고루

'우작'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2003년과 2011년에 심사위원대상을, '쓰리 몽키즈'로 2008년 감독상을 차지한 바 있는 터기 영화계의 자랑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이 마침내 2014년 칸 영화제의 최종 승자가 됐다. 3시간 16분의 다소 긴 휴먼 드라마 '윈터 슬립'으로 생애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터키 영화로는 1982년 일마쥐 귀니의 '욜' 이후 사상 두 번째며, 아시아 영화로는 2010년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 이후 4년만의 칸 최고 영예다.

이광모 감독('아름다운 시절')과의 사석에서도 그랬지만 어느 면에선가, 나는 이렇게 밝혔다. "내게 황금종려상 감을 묻는다면 당위성에서는 <윈터 슬립>을, 선호도에서는 <미스터 터너>를 꼽으련다"고. "<윈터 슬립>은 이른바 영화 작가주의의 어떤 정점이며, 나아가 한 획을 그었다"고 여겨서였다. "논란의 여지 다분하나, 스타일이나 소재, 주제 등에서 드러나는 영화적 일관성, 질적 완성도, 개성 등을 척도로 삼는, 사실상 비평 방법론이건만 '주의'로 통용돼온 그 주의 아닌 주의의 모든 강령들을 전적으로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심사위원장 제인 캠피온을 필두로 한 칸 경쟁 9인 심사위원들은 그 당위적 결정을 한 셈이다.


심사위원대상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이탈리아 알리스 로바허 감독의 '더 원더즈'가 가져갔다. 칸 데일리 평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화제작들이 그 어느 해보다 많았던 데다,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 종합 평균 평점 1.1점(4점 만점)의 저조한 평가를 받아 수상권에 벗어난 게 아닌가 속단했으나,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균 평점 2.6점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2등 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일궈냈다. 친 언니 알바 로바허가 주연을 맡은, 민족지적 색채 물씬 풍기는 개성 만점의 수준 급 성장 영화를 통해. 5인의 여성 심사위원들이 여성 감독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한 것 아니냐는 등의 의구심도 있지만, 그것은 그저 의구심에 지나지 않는다.

3등 상 격인 감독상은 '카포티', '머니볼' 등을 통해 그 연출력을 인정받은, 미국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가 차지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종합 평점 2.8을 득하는 등, 수상이 점쳐졌는데 그 예측대로 귀결됐다. 무관에 그친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 등 다수였던 실화성 전기물이 거둔 유의미한 성취라 할 수 있을 듯.

한편 갈라 크라제트 10인 평가단으로부터 종합 3.8점을 얻는 등 종합적으로 올 칸에서 가장 열띤 지지를 받았던 장 피에르 & 뤽 다르넨 형제의 '투 데이즈 원 나잇'은, 예상을 깨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이미 두 차례나 칸 정상에 등극했던 형제 거장의 신작치곤 지나치게 무난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심사위원들의 판단도 그랬던 듯. 기대를 모았던 마리옹 코티아르의 여자 연기상도, 연기력이라면 세계 최고의 수준을 과시하는 캐릭터 배우 줄리안 무어의 품에 안긴 만큼 아쉬워 할 것 없을 터. 캐나다의 노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맵스 투 더 스타즈'도 만만치 않은 호평을 받으며,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까지 거론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무관은,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의 '팀북투'다. 정치적 격변과 종교 근본주의 등이 남기는 황폐함을, 선동적이거나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덤덤한 시선으로 긴장감 있게 극화했는데,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들에겐 유난히 강했던 영화의 정치·종교적 색채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올 칸의 경쟁 심사위원단은 거의 예외 없이 정치성·시대성보다는 소위 비정치적 예술성 내지 작품성의 손을 들어줬다. 하긴 칸은 전통적으로 영화 예술·미학의 최선봉에 앞장 서왔던 터라, 새삼스러울 게 없긴 하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점 3.6점으로 '윈터 슬립' 등과 더불어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회자됐던 마이크 리 감독의 문제적 전기 드라마 '미스터 터너'는 남자 연기상에 만족해야 했다. 티모시 스펄의 열연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바, 그에 걸 맞는 결과인 셈이다. 영화를 본 이들은 앞으로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화가였던 J.M.W 터너의 그림들을 보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그를 떠올리게 될 게 확실하다. 세종대왕 하면 자동적으로 '뿌리 깊은 나무'의 한석규를 떠올리는 것처럼.

23일 경쟁작 중 마지막으로 선보이며, 그 압도적 이미지·미장센으로 황금종려상 강력 후보로 급부상한 러시아 초정작 '리바이어던'은 정작 각본상을 안았다. "한 작은 마을의 자동차 숍 주인이, 그 남자의 재산과 땅을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마을의 시장과 갈등하게 되는 멀티캐릭터 드라마"다. 러시아 영화가 낳은 세계 영화사의 거대 봉우리 안드레이 타로코프스키('노스텔지아', '희생')의 재림으로 평해지기도 하는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 감독은 데뷔작 '리턴'으로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최우수데뷔작품상(미래의 사자상)을 동시에 거머쥔 바 있는 파란의 주인공. '윈터 슬립'과 '더 원더즈', '미스터 터너' 등에 별 네 개를 준 스크린 인터내셔널 지의 또 다른 기자는, 수상작 분석 기사에서 대다수가 '
리바이어던'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했는데 각본상에 그쳤다고, 아주 주관적인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올 칸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다름 아닌 '안배'다. 영화제의 정치학에서 접근하더라도, 영화상의 안배는 필수적 요청이긴 하나 올해는 그 안배의 정도가 극에 달한다. 17차례의 걸친 그 간의 칸 방문 중, 그 전례를 찾기 불가능할 정도다. 각각 한 편씩 초청된 아프리카('팀북투')와 남미(아르헨티나 다미안 스지프론 감독의 '와일드 테일즈')를 제외하면, 아시아, 북미, 영국 등 유럽, 러시아까지 전 대륙을 망라한다. 하긴 지역적 안배야 으레 반복되기 마련이니 새삼스러울 바 없다. 두 명의 여성 감독―나머지 한 명은 '스틸 더 워터'의 가와세 나오미였다―중 한 감독에게 심사위원대상이란 큰 상을 안겼으니, 타당성 여부를 떠나 안배라 펴하지 않기 어렵다. 안배의 압권은 심사위원상의 향배다. 캐나다의 스물다섯짜리 신성 자비에 돌란의 '마미'와, 80대 중반의 노거장 장 뤽 고다르의 '언어여 안녕'에 공동으로 안긴 것.

판단컨대 그 선택은 해프닝을 넘어, 코미디인 감마저 없지 않다. 고다르 본인도 기분 좋아할 것 같지도 않다. 노장은 공식 상영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예정돼 있던 기자 회견도 열리지 않았다. 시상식 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제 측의 불참을 알리는 서한이 접부였다. 일신상의 이유로 그런 건지, 손주뻘인 적잖은 어린 후배들과, 이른바 '저항 영화'의 대명사를 넘어 '현대 영화'의 어떤 산맥인 세계 영화사의 노거장이 경쟁을 벌인다는 게 불현듯 남사스러워져 그런 건지 모른다. 하튼 칸의 어떤 전통을 감안하면, 칸을 손꼽아 고대하고 직접 찾은 관객들과 영화 프로페셔널들에게 무례라 해도 무방했다. 나 역시도 그 거목의 얼굴을 상영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으니까, 그 아우라를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싶었으니까….

그 덕에 10년 단위로 연령대를 들여다보면 올 칸의 안배는 점입가경이 됐다. 감독을 기준으로, 20대부터 80대까지 다 있는 것. 크로넨버그는 70대다. 마이크 리는 60대다. 세일란은 50대 중반이며, 즈비야진체프는 50대에 접어들었다. 베넷 밀러는 40대며, 알리스 로바허는 30대다. 우연이겠지만, 우연치곤 흥미롭지 않은가.
2014 칸의 안배는 어쩌면 구색 맞추기 아니냐 는 등의 구설수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 내게도 그런 의심이 다소는 찾아드는 게 사실이다. 특히 '팀북투'의 비선택은 두고두고 유감스러울 것 같다. 이래저래 2014 칸은 그 어느 해보다 할 말이 많은 영화제로 기억될 것이다. 애당초는 하려고 했던 올 칸에서의 한국 영화 이야기도 끝내 못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칸은 일종의 성가신 중독이다. 벌써부터 2015년 칸이 기다려진다면 너무 성마른 것일까? /칸=전찬일 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