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들 간의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다소 늦췄을 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고수하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증원규모 축소 합의로 갈등을 미봉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이 사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과 불안을 볼모로 정부와 의사들이 힘겨루기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5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백번 옳다. 성명서 가운데 “지금까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단 한 번도 환자 중심으로 사고되거나 운영된 적이 없었고, 이번 의료 대란도 그 연장선에서 벌어진 참극”이라는 주장 역시 정부와 의사 양쪽이 모두 새겨들을 대목이다. 환자는 의사와 의료 시스템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사들이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 개혁을 앞장선 기억이 없다. 의사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을 리 없다.

'의대 증원'은 의료 시스템을 환자 중심으로 바꿔나가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확충 방안이 맞물려 설계되고 추진되지 않으면 의도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사 집단이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점을 노려 2000명을 밀어붙이는 듯하다. 문제는 갈등이 고조될수록 마치 의대 증원이 의료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여론이 호도된다는 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의대 증원은 환자중심 의료개혁의 첫 단추일 뿐이다.

총선용 시간 끌기가 아니라면 정부는 당장 협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2000명 고수는 괜한 고집일 뿐이므로 일단 철회하는 게 맞다. 의사단체 내에서도 증원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증원 문제라는 첫 단추를 끼운 이후에는 의·정 만이 아니라 환자와 시민사회까지 참여하는,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가 반드시 구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