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200여년 전인 1825년 12월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는 러시아 차르(황제) 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렇다 할 준비도, 조직도 없이 밀어붙인 봉기는 쉽게 진압되었고 그 주동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나머지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으로 유배를 떠났다. 지금도 바이칼 호수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가면 당시 유배를 왔던 볼콘스키의 집을 개조해 만든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이 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좋아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꽤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도 소개되고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어설픈 무장봉기는 차르 체제를 더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러시아의 손꼽히는 차르인 니콜라이1세가 모든 혁명세력을 초토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러시아 차르 체제는 그로부터 100여년 뒤 러시아 혁명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통치자들은 국가체제와 권력구조만 달리했을 뿐 사실상 차르 체제는 지속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러시아 정치에는 그 뼛속까지 차르 체제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1990년대 공산권 몰락과 소비에트 체제의 분화 이후 러시아 정치는 잠시 '민주화의 봄'이 찾아오는 듯했으나 역시 한계는 뚜렷했다. 푸틴의 등장이 그 신호탄이었다. 2000년 러시아 3대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은 잠시 총리를 맡은 것을 제외하면 직업이 대통령과 다름 아니다.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이 5선에 당선됐다. 그것도 87% 득표율로 압승이었다. 러시아 대통령 임기는 이제 4년이 아니다. 지난 2020년 개헌을 통해 임기가 6년으로 바뀌었으며 3연임 금지 조항도 폐지됐다. 맘만 먹으면 2030년에도 대선에 출마해서 사실상 종신 집권도 가능하게 됐다. 푸틴을 '현대판 차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스탈린의 집권기간 29년을 넘기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푸틴은 이미 자신을 18세기 초 근대 러시아를 이끈 표트르 대제와 견주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불멸의 차르'로 남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푸틴의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하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의 대선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러시아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민생에 지친 국민의 불만과 분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국가들이 푸틴과 손을 잡으면서 급한 불은 꺼지고 있다지만 갈 길은 멀다. 이런 가운데 오는 5월 집권 5기 첫 방문지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소식이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중러 정상회담은 우리에게도 민감한 내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북한 답방도 테이블 위에 있을 수 있다. 한반도 분단선을 경계로 말 그대로의 신냉전체제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우리는 최소한 향후 푸틴의 러시아 10년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푸틴이 한국을 멀리하는 현실이 영 맘에 걸린다. 냉철하고도 균형감 있는 외교력이 절실한 요즘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