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인천(仁川)이란 지명은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우선 조선 태종(1413년) 때 전국 행정구역을 새로 정하면서 처음 생겼다고 확인된다. 그 전까지는 '인주(仁州)'로 불렸다. 무릇 주(州)자를 따르는 이름을 산(山)과 천(川)자로 고칠 무렵이었다. 고을 이름 전환 때 물에서 가까운 곳엔 천(川)을, 산이 많은 곳엔 산(山)자를 붙였다. 인주는 바다(물)를 끼고 있는 곳이어서 '인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천이란 지명은 결국 인주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을 말하는 주(州)엔 특별한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인천이란 이름을 풀기 위해선 인(仁)의 뜻을 알아야 한다. 인은 '어질다'란 의미여서, 인천은 '어진 고을'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 문종부터 인종까지 7대에 걸쳐 인천에 살던 인주 이씨 집안이 임금의 친인척, 곧 '7대어향(七代御鄕)'이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인천 최초의 이름은 미추홀이다. 고구려에서 내려온 비류가 백제 초기 도읍지로 정하고 지명을 그렇게 했다. 이후 고구려(475년) 때는 매소홀현, 통일신라시대(757년) 때는 소성현으로 불렀다. 이어 고려시대(숙종∼인종∼공양왕) 들어 경원군과 인주란 이름을 갖게 됐다. 결국 미추홀-매소홀-소성-경원-인주-인천도호부-인천부-경기도 인천시-인천직할시-인천광역시로 이어진다. 인천도호부란 명칭은 꽤 오랫동안 쓰이다가 400여년이 흘러 고종 32년(1895년) 인천부로 통일됐다.

이런 인천이란 이름의 유래와는 달리, 중구 영종에 전래되는 지명을 헷갈리게 사용해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먼저 운서동에 있는 '넙디' 버스정류장을 예로 들 수 있다. 넙디란 '넓은 마을'을 가리키는데, 개발 전 탁 트여 있던 영종도 모습에서 생겨난 지명으로 알려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명도 '넙디로'다. 하나 이곳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 근처에선 넙디를 달리 쓴다. 단지와 마주한 공원 입구엔 '넙뒤공원'이란 푯말을 세웠다. 용유동 '마시란'도 그렇다. 본디 '말 안장'이란 뜻에서 파생했지만, 중구는 '마시안'으로 표기한다. 이 지역 바닷가도 '마시안해변'이다. 반면 이 일대 도로엔 '마시란로'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지명은 지역의 과거·현재·미래 등을 상징한다. 시대에 따라 그 이름은 변경을 거듭하기도 한다. 인천시 남구가 몇 년 전 남구를 미추홀구로 바꾼 일이 대표적이다. 그간 입으로 전해져 오던 지명들이 도시개발 과정에서 행정용어로 편입되면서 빚어진 혼선은 바로잡아야 할 듯싶다. 지역과 어울리는 이름은 지역의 역사와 맞물려 시작되기 마련이지 않는가.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