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 설 연휴는 두 가지 면에서 조심스러웠다. 우선 코로나 19의 확산 추세다. 1만 명을 넘어 2만 명을 바라보는 확진자의 증가는 사회 전체를 움츠리게 한다. 아니 두렵기까지 하다. 정부도 명절의 대이동 자제를 권고했다. 권고를 무시하고 가족들을 만나더라도 밥상머리 대화가 조심스러웠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때문이다. 식탁에서 정치 이야기를 일부러 안 한다는 집도 있다. 대화의 갈등을 원천 차단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초미의 관심사는 자연 발생하기 마련이다. 어느 구석,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왕래가 잦지 않아서 일상의 공통소재가 없는 대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게다가 현재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 조사는 초접전 양상이다. 그러므로 대선에 관한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명절의 가족 식사와 대통령선거라는 두 가지 이슈가 부상하며 문득 설렁탕이 떠올랐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은 설렁탕을 '조선 시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에서 끓여 먹은 고깃국'이라고 정의한다. 선농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소뼈와 고기를 함께 고아낸 소고기 국물을 나눠주고 거기에 밥을 말아 먹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선농탕(先農湯)'은 '설롱탕'을 거쳐 '설렁탕'으로 변화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발음의 편의성 때문이다.

설렁탕이라는 스토리텔링의 구체화에는 성군이신 세종대왕도 등장한다. 세종이 선농단에서 친경(親耕: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할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선농제에 참여한 백성들은 배고픔을 못 견뎌 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세종은 결단을 내렸다. 친경에 썼던 소를 잡아 물에 넣고 끓이라고 지시했다. 미리 준비한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지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우선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이 음식을 대접했다. 이처럼 설렁탕은 임금이 나라의 산업 중흥을 기원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이다.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많은 권한과 책임이 따른다. 권한과 책임은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그 전제는 애민 정신이다. 애민 정신은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다. 민생 경제가 거기서 움튼다. 외교 관계 역시 거기서 발현한다. 자주국방과 세금부과의 원천도 동일하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권한과 책임을 잘 조화한 인물은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권한과 책임의 혼합범주에서 모범적인 업무수행을 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권한만 누리려는 대통령이 있었다. 성과와는 상관없이 무한책임만 요구받은 대통령도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사례에서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권한 남용과 책임 없는 자세를 취했던 대통령의 말로는 항상 불행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이 좌우한다. '대통령은 그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약 한 달 후면 드러날 것이다. 설렁탕의 유래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당신의 선택은 누구인가?

 

/박정민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