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사장이 음료수를 사다 주면 무조건 동영상을 찍어야 해요. 막 이렇게 흔들면서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하기 싫은데 말이죠.”

“'목표를 채우지 않으면 주말도 없다. 연봉도 동결이다'라고 말합니다. 일이 힘들어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워 그러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회사는 직원의 피를 태워 불을 밝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청년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어느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라 2022년을 사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 년째 이어온 고용시장의 침체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이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은 청년여성들이 일할 자리는 더욱 좁혀져 갔다. 20대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 중 하나로 고용위기에 대한 침묵이 조용한 학살을 불려왔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 성차별적인 노동환경 구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전국의 여성노동자회가 90년대생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 6000명이 넘게 응답한 것은 여성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곳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실태조사와 면접조사를 통해 이들의 노동 이력과 삶을 살펴보았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근로조건 속에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성차별적인 직장문화의 관행이 '쌍팔년도'식으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상사의 괴롭힘인 부당한 업무지시와 인격적 무시로 인해 일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노동환경에서 조차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봐도 이직이 필수가 되고 원하지 않는 노동단절이 되기도 한다. 청년여성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고 노동을 하지만 빈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유예된 미래, 빈곤을 만드는 노동'인 세상이다.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에게 일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수단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일이 없는 상태는 심리적 위기, 존재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고 있지만 노동환경은 50대 후반 엄마가 겪었던 성차별적인 관행이 오늘을 사는 20대 딸에게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노동이 경제활동의 주체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필요할 때 활용 가능한 인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로 설계된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구조가 노동환경에 깊이 뿌리내기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30%가 넘었으며 20대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이제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별 생계 책임자로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구조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 생계책임에 있어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성차별적 노동환경으로 여성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성차별적인 노동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생계에 성별이 없다. 성차별 없는 일터에서 여성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노동하는 그날, 오롯이 나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날, 바로 우리의 노동이 보편화되는 때이다. 그때야말로 진정 청년여성노동자들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빈곤을 만드는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다.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