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한강하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말도로 흐르는 67㎞ 물길을 한강하구로 부른다. 정전 선언 이후 70여년간 '금단의 땅'으로 꼽힌 구역이다. 수십년간 사람 손길이 닿지 못해 매우 뛰어난 자연생태계를 자랑하기도 한다. 다른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그렇게 유지해서다.

무엇보다 한강하구인 황해도와 강화 교동도엔 비슷한 점이 많다. 실제로 교동도엔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넘어온 피난민이 많이 산다. 한국전쟁 발발 전엔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 사람들이 마치 옆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동도엔 연백장을 닮은 '대룡시장'이 유명세를 떨친다. 북한과 화해 무드를 탈 적마다 언론에서 단골메뉴로 채택해 보도할 정도다.

한강하구는 한강을 비롯해 임진강·예성강·한탄강을 휘돌아 감는 어귀다.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인파가 넘치는 '풍요의 물길'로서 역할을 감당했다. 고려시대 때는 수도 개성의 관문으로서 국제무역항인 벽란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 상인과의 교역도 활발했다. 이들을 통해 '코리아'란 이름을 세계에 알린 사실이 새롭다. 조선 때도 한양으로 진입하는 통로 구실을 맡아 구한말까지 숱한 영욕을 겪어냈다.

그랬던 한강하구가 오늘날엔 '침묵의 물길'로 전락해 과거의 모습을 아련하게 한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남북이 양안을 각각 차지한 채 휴전을 맞은 후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전쟁이 끝난 후 시계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남과 북을 가로막는 벽에 갇힌 채 '대립의 강'으로 남아 안타깝게 한다. 오늘날 한강하구는 강 상류에서 흘러오는 갖가지 쓰레기와 하수 등으로 몸살을 앓는 곳으로 변했을 뿐이다.

이런 한강하구를 마냥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활동이 벌어져 관심을 모은다. 남북 교류와 평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자는 '운동'이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는 지난 1월26일 인천 YWCA에서 '대선 정책토론회'를 열고 남북 평화를 위한 제안을 쏟아냈다. 우선 철책으로 막히지 않은 한강하구에서 민간 배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출입권한을 행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기본으로 남과 북이 한강하구 통행검사소를 만들어 민간 선박의 신고·출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한반도 중심을 지나려면 거쳐야 했던 한강하구는 무척이나 활기를 띠었던 지역이다. 문화·교통 중심지로 명성을 날렸던 과거를 되찾는 일은 그래서 시대의 요구일 수밖에 없다. 이젠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장벽을 걷어내고 함께 평화의 길을 걸어야 할 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르는 한강하구의 진면목을 다시 밝혀 모두의 희망으로 일궈나갔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