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제일 큰 만화방 … 추억을 읽는 카페
부천 만화도서관
국내·외 자료 27만여권 소장 …열람은 기본 토론·포럼도
부천 오정도서관
만화책 1만3300여권 등 구비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각광



책 빌리고 읽는 장소. 공부하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는 공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서관의 기능이다. 최근 경기도 곳곳의 도서관들은 이러한 기능을 뛰어넘어 배우고 체험하는 복합문화공간이자 지식·경험을 주고받는 공유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만화도서를 보유한 부천 만화도서관과 카페와 만화를 결합한 부천시립오정도서관이 그 중 하나다.


▲ '추억의 문' 여는 부천 만화도서관
"이렇게 다양한 만화들을 무료로 편하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난 17일 낮 부천시 상동 한국만화박물관 2층에 자리한 만화도서관은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노인부터 중장년, 청년, 초등학생까지 일반열람실 곳곳에 자리 잡고 책장을 분주히 넘겼다. 책꽂이마다 드라마, 스포츠, 웹툰 등 만화책들이 장르별로 빽빽이 꽂혀있고 의자에 책들이 수북하게 쌓인 모습은 만화방을 연상케 했다.
정모(58·인천 청라)씨는 "만화방에서 보면 돈을 어느 정도 내야 하는데, 여기서는 쾌적한 환경에서 무료로 만화를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만화도서관은 만화가 대중콘텐츠로 각광받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만화자료를 보관·연구·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2009년 들어섰다. 2000년 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정보관으로 시작해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전문도서관으로 국내외 만화자료 27만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만화책이 한가득인 일반열람실, 놀이방처럼 꾸민 아동열람실, 애니메이션 감상용 영상열람실, 책 보며 대화 가능한 오픈 라이브러리 등으로 도서관을 구성했다.
오랜 연혁답게 고서도 많다. 87년 이전 출간된 옛날 만화 자료와 원화 등 500여 작품은 항온습도 조절시설을 갖춘 수장고에 보관하고, 컴퓨터 2대에 디지털로 변환해두어 누구나 열람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웹툰을 책으로 보려는 학생,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어른, 만화연구자 등 다양한 이들이 열람실을 찾는다.
전라도 광주에서 온 정상규(72) 할아버지는 "10대 무렵 보던 만화책들을 보려고 매년 온다"며 "어릴 때 모아둔 책들이 사라져 다신 못 볼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 다시 보니 옛 생각이 난다"고 했다.
열람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만화 내용을 주제로 토론하는 '만화책 읽는 중학생' 프로그램을 9월부터 시작한다. 전문가들이 공동 연구·발표를 통해 이슈를 던지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만화포럼도 2014년부터 정기 운영하고 있다.
김유정 도서관 팀장은 "만화는 벽이 없다. 언어가 통하지 않거나 이념이 다른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다"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만화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발전시키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 과거-현재 아우르는 만화전문체험관
만화도서관의 장점은 만화사 100년을 담은 박물관과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만화도서관에서 한층 올라가면 있는 상설전시관은 1980년대 인기작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과 '아기공룡 둘리(김수정)'가 연재된 만화잡지 '보물섬', 2000년대 웹툰 등 시대별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 세대와 소통한다.
용인 대청초등학교에서 온 이준서(11)군은 "흔히 볼 수 없는 옛날 만화책들을 시대별로 볼 수 있어 신기하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왔었는데 '슬램덩크' 얘기도 하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어른에게도 배움의 장이 된다.
교양수업을 듣는 대학생 33명과 함께 온 백두산(35) 성공회대 교수는 "만화나 웹툰이 한국에서 가진 위상에 비해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성인들도 소비할만한 문화콘텐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만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이곳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만화박물관은 상설전시관 외에도 애니메이션·공연·영화를 관람하는 만화영화상영관,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4D 상영관, 체험마당, 기획전시실 등 여러 시설물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전문체험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연평균 방문객이 3년 전인 2015년 21만7000여명에서 2016년 22만8000여명, 지난해 25만여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다.
최미영 박물관 팀장은 "사라져가는 만화자료들을 수집·보존해 문화·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다"며 "도서관과 각종 전시를 통해 만화의 가치를 전하고 문화적 기능을 넓히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 '만화+카페' 오정도서관
부천 오정어울마당 지하 1층~지상 2층에 위치한 오정도서관은 만화에 카페가 어우러진 쉼터다. 부천시가 만화영상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한 점과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만화의 성격을 고려해 '만화+카페'를 테마로 2014년 4월 개관했다.
만화가 콘셉트인 만큼 4월30일 기준 전체 장서 8만1923권 중 16%인 1만3342권을 만화책으로 구비해 2층 만화아지트 책장 곳곳에 장르별로 꽂았다. 태블릿PC를 이용한 웹툰 전용 공간도 만들었다.
이밖에 일반 도서가 있는 종합자료실과 푹신한 매트를 깐 아동·유아자료실, 4~6명이 이용 가능한 스터디룸, 고(故) 신동우 만화작가를 위한 헌정관 등 다양한 시설물을 마련해 가족단위로도 많이 찾으면서 4월30일 기준 일평균 방문객이 1109명에 달한다.
가족과 매주 한두 번씩 온다는 방은숙(43·여)씨는 "아이와 남편이 만화책 보는 동안 종합자료실에 있는 책들을 빌려와 읽는 등 어른 아이 모두 즐길 수 있어 가족 나들이를 도서관으로 온다"고 했다.
탁 트인 구조는 오정도서관의 또 다른 특색이다. 1층 종합자료실은 배관을 그대로 드러낸 높은 천장과 다락방, 창가 좌석 등으로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내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 달리 편안하게 책을 보면서 인터넷을 하도록 노트북 사용과 뚜껑 있는 음료수 반입도 허용했다.
책 읽기, 독서지도 등 정규강좌 7개와 매달 다른 주제를 테마로 한 강연회, 인형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이곳의 인기를 더한다.
아이와 함께 정규강좌 클레이 수업에 참여한 하영이 엄마는 "아이가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정도서관의 목표는 도서관을 거점으로 만화, 책 등 여러 형태의 콘텐츠를 활용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 있다.
임윤정 도서관장은 "모든 시민의 삶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며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만큼 소외되는 사람 없이 변화와 기회를 만들어가는 장소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예린 수습기자 yerinwriter@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