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天刑)을 이겨낸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1975)이 인천에서 다시 태어난다. 한 시인이 1975년 2월 28일 인천 십정동에서 숨을 거둔 지 42년 만이다. 이제야 그의 명예를 세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경의를 표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부평구는 오는 14일 십정동 백운공원에서 '한하운 시인 시비 건립 제막식'을 연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보리피리'가 새겨졌다. '보리피리'는 한센병으로 방황을 해야 했던 삶의 애환과 어린 시절 향수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비는 책을 펼친 형상이다. 백운공원은 한 시인이 지병인 간경화로 영면한 부평구 십정동 자택 근처에 있다.

한하운은 부평에서 25년 이상 살며 시를 쓰고, 나병(癩病)자활운동을 펼치다 부평에서 사망했다.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10대 시절 당시 천형으로 불리던 나병을 진단받고 실의에 빠졌다.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일본과 중국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생의 가치를 버리지 않은 그는 결국 자신에게서 모두를 빼앗은 나병을 시적 영감으로 삼았다. 당대 문인들이 활동하던 서울 명동에서 그의 사연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시는 '나시인 한하운 시초'라는 이름으로 활자화됐다. 그러다가 한하운은 부평에 새로운 나환자수용소를 만들려는 정부의 교섭을 받아들여 수원천변에서 함께 거주하던 70여 명의 나환자 가족을 이끌고 새 정착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곳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뜻으로 성계원이란 이름을 짓고, 나환자 자활을 위해 힘을 쏟았다. 성계원 생활 10년 만에 자기 병은 치료했지만, 부평을 떠나지 않고 나병에 대한 잘못된 세상의 인식을 일깨우면서 죽는 날까지 펜을 들었다.

우리가 한하운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생활 속의 시'를 담아내고, 한센병 동료들을 위해 한평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고된 생활을 버리지 않고 처절하게 노래하는 시에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그동안 그를 조명하는 사업은 여럿 있었지만, 얼마 전 '한하운 백일장', '한하운, 그의 삶과 문학 국제학술심포지엄' 등에 이어 이번에 시비를 건립하게 됐다. 극한적 상황에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한 그의 의지는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빛'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