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데요,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하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어요.
▶ 제물포의 밤은 그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한다. 벌써 해가 지고 부슬부슬 비는 오고 밤은 끝없이 계속 될 것만 같다. 싸늘한 바닷바람 앞에서 한 사람이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 "고요히 누워 들으면" 하얗게 밀려드는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 밀물이 흐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흐느끼는 것은 밀물뿐이 아닐 것이다. 바닷소리를 듣고 있는 한 사람도 흐느끼고 이 시를 읽고 있는 우리도 또한 흐느끼게 만드는 제물포의 밤이다.
이 시는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에 수록되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제물포의 밤 풍경에 담아내고 있다. 1922년 2월 '개벽' 제20호에 발표되었던 시이다. 한국의 현대시에서 인천이 등장하고 있는 최초의 시라 할 수 있다.
제물포의 바다는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밀려들고 밀려나갈 뿐.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지만 더 큰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고요히 밀려가고, 고요히 밀려오는 제물포의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100년 전의 바다에서 김소월이 노래한 그리움의 정서는 현재 우리의 가슴 속에도 먹먹함을 남기고 있다.
/권경아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