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길 … 굳은살 갖췄으니 이제 시작
▲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의 손은 오랜 연습으로 오른손과 왼손의 손가락 길이가 다르고 굳은살이 배겨 있다. 그녀는 "예술이 쉽게 완성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시간 중 무작위 20분만 심사
준결승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방학 맞아 송도 가족품으로
매일 5시간 연습은 유지
나만의 색 찾아 감동 주고파



"제가 좋아하는 슈베르트는 잠을 잘 때도 안경을 벗지 않았대요. 왜냐하면 잠들기 직전이나 깨어났을 때 악상이 떠오르면 바로 옮겨 적으려고요. 슈베르트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작곡가도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말을 듣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연주자가 되려면 제가 가진 모든 걸 바쳐 최선을 다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6월 24일 '2018 워싱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받으며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 떠오른 이유진씨가 방학을 맞아 귀국,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다.

"우승을 차지하니 그동안 저를 가르쳐준 선생님들과 엄마, 아빠와 가족들이 떠올라 감사를 드렸지요. 하지만 기쁘다고 들뜨지 않고 차분해지려고 해요. 아직 도전할 큰 대회가 있고 예술이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서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인천 토박이인 그녀는 3세때부터 작곡을 전공한 어머니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한 뒤 인천동명초등학교 2학년때 예술의 전당 영재 아카데미에 뽑혀 서울예원중학교에 다니다 지난 2010년 미국 콜번스쿨을 거쳐 2016년부터 커티스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워싱턴 국제 음악 콩쿠르는 매년 열리지만 현악 콩쿠르는 3년마다 열려요. 한해는 피아노, 한해는 성악이 열리기 때문이죠. 예선부터 결선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예선 때는 세계 곳곳에서 100여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의 연주 장면을 담은 DVD를 보내면 심사위원이 심사를 해서 30명을 걸러 준결승을 치르는데 30명은 워싱톤에서 경연을 하죠. 마지막 6명이 우승을 다투는데 3명을 선발해서 최종 1, 2, 3위를 선정해요. 준결승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차이코프스키, 베토벤 등 6곡을 1시간 훨씬 넘게 계속 연주하는데 정작 심사위원들은 그중 20분만 들어요. 언제 들을지 몰라 계속 긴장해서 연주해야 하지요."

그녀는 국내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은 물론 미국으로 간지 3년만인 지난 2013년에 클라인 국제 음악 콩쿠르 1위와 스툴버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는 1위와 함께 바하 특별상까지 받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커티스 음악원은 필라델피아에 있는데 한국에서도 유명한 피아니스트 랑 랑과 유자 왕,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힐러리 한 등이 졸업한 학교에요. 학교는 작은 편이지만 선발되면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어요. 학생수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120명 정도인데 한국 학생은 20명이고 바이올린은 저를 포함해서 8명이에요. 인천 출신은 저 혼자인데 한국 친구들과는 자주 어울리고 친해요. 바이올린 전공자는 1년에 2~3명밖에 뽑지 않아서 들어가기 무척 어려운 곳이에요. 대학과정은 4년이지만 10대 초반에 선발되면 공부기간은 더 길어져요. 콜번 스쿨은 학생들에게 연주 기회를 엄청 많이 줘서 '무대 공포증'이 없어지게 됐어요. 어렸을 때 무대에 많이 설수록 단련이 되니까 특히 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콜번에서는 바이올린 레슨으로 유명한 로버트 립셋 선생님, 커티스에서는 바이올린 거장 아이다 카바피안 선생님께 배우고 있는데 두 분을 만난건 저에게 큰 행운이죠."

모처럼 맞은 방학이라 빡빡한 레슨과 연주 일정에서 벗어나 집에서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것 같았지만 그녀는 매일 5시간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28일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그슈타드 메뉴힌 페스티벌(Menuhin Festival Gstaad)'에 초청돼서 가야해요. 15일간 머물면서 아티스트로 오신 분들에게 레슨도 받고 같이 실내악 연주도 할 예정이에요. 기돈 크레머라고 유명한 바이올리스트가 디렉터였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스티벌이라 무척 기대되요. 끝나면 미국으로 바로 갈거에요. 방학인데도 아주 바빠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에후디 메뉴힌의 이름을 딴 그슈타드 메뉴힌 페스티벌은 7월부터 9월까지 알프스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중 하나인 그슈타드에서 개최되는데 해마다 전세계의 톱 클래스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국제적인 음악축제이다.

그녀의 손가락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그렇듯 오른손과 왼손의 길이가 다르다. 왼손이 높은 음과 낮은 음의 현을 빠르게 오가며 누르느라 더 길어졌다. 왼손가락은 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굳은살이 배겨 있고 활을 잡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도 굳은살이 올라있다. 그녀는 자신과 바이올린은 '애증관계'라고 했다.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울면서 연습해요. 애기가 울어도 달래줘야 하는 것처럼 뭔가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울어버리는거죠.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연습을 왜그렇게 많이 하냐. 연습좀 그만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릴 때는 하루에 8시간넘게 연습했는데 요즘은 집중할 수 있을 때 5시간 정도 연습해요."

그녀는 워싱턴 콩쿠르 우승 특전으로 오는 11월부터 워싱턴오케스트라와 협연과 워싱턴주 순회 공연일정이 잡혀 있고 최근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회를 갖는 등 많은 시간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는 청중들에게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또 리사이틀 할때는 반주자인 피아니스트와 호흡이 중요하고 현악4중주나 오케스트라와 협연 때는 같이 하는 연주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죠. 음악에 대한 의견이 서로 엇갈리면 질문을 많이 해요. 상대방이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생각을 맞추죠."

연주를 마치고 대기실로 갈 때마다 '아직 멀었구나. 연습을 더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그녀는 "청중들에게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몰입하고 있을 때 청중들도 기쁨이나 슬픔을 교감하고 있는게 느껴져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표현방식이 다른데 '유진이의 연주가 더 감동적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고 싶어요. 쉽게 완성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지만 '이유진이 하는 바이올린은 한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저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그녀는 바이올린을 위해 피아노와 작곡도 공부하고 있고 다음 학기에는 지휘도 배울 계획이다.

"요즘 무척 덥죠? 더울 때는 브람스의 '인터메조'나 조지 거슈인의 '섬머타임'이 바이올린 곡으로도 나왔는데 이런 곡들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을거에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이유진 프로필

학력
·2016~현재 커티스 음악원
사사: 아이다 카바피안
·2010~2016 콜번학교
사사: 로버트 립셋, 다니엘 벨렌
·2008~2010 예원학교
사사: 정재훈, 홍종화
·2004~2008 예술의 전당 영재 아카데미
사사: 진현주, 홍종화
·2002~2007 인천동명초등학교

수상경력
·2018 워싱턴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및 청중상
·2018 서울 국제음악 콩쿠르 2위
·2017 무네츠쿠 바이올린 국제 콩쿠르 4위
·2016 경기 영아티스트 선정
·2016 메뉴힌 바이올린 국제콩쿠르 세미 파이널리스트
·2015 무네츠쿠 바이올린 국제콩쿠르 3위
·2013 스툴버그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바하 특별상
·클라인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2009 금호 영재 오디션 합격
·2007 예원 음악 콩쿠르 초등부 대상
·바로크 음악 콩쿠르 1위
·소년 한국일보 콩쿠르 1위
·인천시 음악협회 콩쿠르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