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열악한데 관련규정 '사망시 작업중지'뿐
한낮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았던 18일 오전 인천 동구 한 아파트 경비실. 선풍기는 아침부터 더운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경비원 A씨(73)가 일하는 3.3㎡(1평) 남짓한 이 경비실에 가전제품이라고는 선풍기 1대와 수십 년 된 TV가 전부였다.

A씨는 "에어컨을 놔 달라 건의했지만 주민들이 전기세 많이 나간다고 반대했다"며 "낮보다 바람 안 부는 밤이 더 괴롭다. 그나마 서늘한 아파트 입구 복도에서 종종 쉰다"고 했다.

아파트 근로 환경이 열악한 건 청소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중구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60대 여성 미화원 B씨는 휴게실이 어디냐는 물음에 창고를 가리켰다. 곰팡내가 나는 창고엔 대걸레와 빗자루, 낡은 의자가 뒤죽박죽 쌓여 있었다. B씨 머리에 두른 손수건이 모두 젖어 있었다.

같은 날 오후 12시쯤. 부평구 한 개별공장 단지 식당에선 배식구 말고 세면대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 노동자가 적신 머리에다 비누를 벅벅 문지르니 검은 물이 배어 나왔다. 식당 주인은 "공장에 씻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여기서 씻고 에어컨 바람도 쐰다"고 설명했다.

이 일대에는 별도 공단 조성 없이 소규모 업체들이 주거지와 뒤섞여 밀집해 있다.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이 주를 이룬다. 폭염에도 공장들은 창문, 대문 모두 열어놓고 있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밀링공으로 있는 C(54)씨는 "쇳가루 환기 시설 들여놓으려면 비싸니까 문을 열고 일한다. 에어컨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온열질환 절반은 작업장서 발생

지난해 여름 인천지역에서 집계된 온열질환자 54명 가운데 절반 정도인 21명은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던 2016년에는 전체 온열질환 신고 건수 102건에서 작업장은 46건을 차지했다. 매년 기세를 더해가는 여름 더위에도 작업장 환경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인건비 지급도 부담인 아파트 관리 업체나 영세 기업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 노동자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중구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아파트 세대 수가 많지 않아 에어컨과 냉장고를 놓을 형편이 못 된다. 경비원도 없애고 내가 대신 일하면서 어렵게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직원 2명 규모 금형 업체를 운영하는 한 업주도 "요즘 한 달 1000만원 정도 수입으로 공장 월세 내고 나눠 갖는다. 대형 냉방 장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자치단체, 폭염 대책 무관심

산업 현장 폭염 대책과 관련 정부나 인천시, 자치단체 개입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 휴식을 제공하지 않아 사망에 이를 경우 야외 작업을 전면 중지시킨다는 정부 지침이 전부다.

인천시와 자치단체들은 법적 근거도 없고 아파트마다 상황이 다르다며 경비실 냉방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아파트 사업을 승인할 때 어린이 놀이터나 관리사무소, 주차장 등에 대한 면적과 시설 기준이 있는데 경비실 짓는 데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김원진·김예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