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끓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환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내 옆집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모르고 산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이따금 현관문을 두드리는 낯선 이가 있기는 했으나 왠지 경계심이 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가끔 아이들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릴 때는 베란다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소리들을 마음껏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이런 몇 겹의 방호망을 친 내 집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파트 베란다에 들어와 편히 앉아 있는 햇빛을 가만히 바라본다. 분명 아파트는 감옥처럼 밀폐돼 있는데, 저것이 어떻게 소리 없이 들어와 일렁거리고 있는가. 햇빛은 매일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고 유리의 칼날 사이로 스며들어 내 마음을 어루만지다 돌아간다.
참 고맙다 햇살. 이웃이 없는 이 시대에 죽마고우처럼 슬며시 나를 찾아와 따뜻하게 머물다 돌아가는 너를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다.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겠지만, 청량한 바람과 소리를 피 한방 흘리지 않고 내 집 베란다와 소파에 들어오게 할 '유리의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니, 그것이 유감이다. 오늘도 아파트는 '유리의 기술'로 인해 따뜻하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하다.

/권영준 시인·인천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