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받은 하청업체 대표, 유서 남기고 '분신' … 가족 "억울하고 분해"
"아이고 내동생 불쌍해서 어떡해. 대금 지급일만 지켰어도 동생이 살아있을 텐데….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4일 외벽 석재 마감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1)씨의 비보를 듣고 현장을 달려온 누나(58)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원통해했다. 동생이 일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용인시 처인구의 한 전원주택단지 사고현장은 누나의 비통함처럼 장맛비에 엉망이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15분쯤 시집보낼 딸에게 전세금이라도 쥐어 주겠다는 기쁜 맘으로 땀을 쏟았던 그 공사현장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댕겼다. 그는 결혼 날짜를 잡은 딸 등 모두 6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김씨는 전날인 3일 밀린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시행사가 있는 충남 당진을 찾았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해 낙담한 채 용인 현장으로 올라왔다.

유가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2월 시행사 A업체와 계약을 했다. 이 업체가 용인시 처인구에 짓는 전원주택단지(30동)의 외형을 고급스럽게 꾸미는 일을 맡았다. 계약금은 총 5억5000여만원이다.

김씨는 새벽녘부터 인천과 용인을 오가면서도 동료들에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공사대금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들쭉날쭉한 탓에 일정은 미뤄지고,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공사대금을 밀려도 매일 채용한 일용직 노동자 100여명의 임금은 단 하루도 밀리지 않고 자비로 지급해줬다. 현금으로 석재 등 공사자재를 구입해 일을 했지만, 일을 시킨 시행사가 공사대금을 제때 주지 않으면서 밤에는 돈을 빌리려 동분서주했다. 지난 3월부터는 자녀가 모아둔 돈까지 모두 끌어다 쓰거나, 대출을 받아 인건비를 지급하면서까지 버텨왔다.

동료 공모(51)씨는 "대금 지급이 7차례 이상 늦춰 쳐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어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비를 털어 인건비를 손수 챙겨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던 친구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거웠다. 돈을 더 댈 여력이 없었다. 6월까지 그에게 지급된 돈은 3억여원이 전부다. 이 돈은 딱 자재비였다.

그는 4월 동료들과 유치권 행사 등 밀린 대금을 받을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금문제 때문에 쉽사리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희망이 왔다. 업체로부터 6월22일까지 공사를 마무리하면 같은 달 30일까지 1억3000만원을 우선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는 약속을 굳게 믿었다. 밤낮으로 현장에 나와 기일 내 공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그는 장독 투병으로 사흘간 굶다시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시행사는 약속을 미뤘다. 주택에서 물이 샌다는 이유에서다. 유가족과 동료는 시행사가 돈을 주기 싫어서 김씨 업무와 관련 없는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누나(58)는 "동생은 돈을 메우기 위해 아픔 몸을 이끌고 새벽마다 공사현장에 나섰다. 공사를 끝내는데 얼토당토않은 변명으로 돈을 주지 않으면서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 것이다"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그는 4일 오전 6시쯤 공사현장을 찾았고,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힘들다. 죽어버리겠다"고 한 하소연이 마지막이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6자녀 한명 한명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시행사 대표에게 쓴 유서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 월급은 꼭 챙겼습니다. 사장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 유가족은 "돈 갖고 장난치다가 사람을 죽였다. 억울하고 분해서 참을 수 없다"며 분노했다.

경찰은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김씨의 유서 내용 등을 토대로 시행사의 공사대금 체불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한편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관할인 수원·화성·용인에만 신고된 임금 및 공사대금 체불은 2만2000건(2017년 기준)으로, 체불액만 680억원에 달한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