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보관하고 마시고 … '와인'은 조지아인 삶 그 자체
▲ 조지아 텔라비에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과 주변 풍경.
▲ 알라베르디 대성당
▲ 알라베르디 대성당의 천년 된 와이너리,
▲ 텔라비의 전통 크베브리 와이너리.
▲ 와인 종주국 조지아의 풍경

포도주 담근 8000년 된 항아리 발견

 


크베브리 제조법 유네스코 유산에

텔라비 소재 알라베르디 대성당엔

천년의 역사 이어온 와인저장소가

와인제조, 신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

축제·결혼식·실생활에 언제나 마셔



아르메니아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아라라트 산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 정착한 땅이 아르메니아라고 한다. 이때 노아가 처음으로 포도씨앗을 심어 오늘날처럼 포도가 전 지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5000년 전의 가죽신발과 포도 씨앗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지아는 코카서스산맥으로 둘러싸인 국가지만 비옥한 땅이 많다. 2만개가 넘는 물줄기들이 비옥한 대지를 초원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명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햇살이 좋아 포도재배에도 최적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지아에서는 언제부터 포도를 재배하였을까. 조지아에서는 8000년된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포도씨앗이 있었다. 포도주를 담근 항아리였던 것이다. 이로 미뤄본다면 조지아의 포도재배는 아르메니아를 훨씬 앞선다.

조지아는 포도재배의 역사가 알려주듯 명실 공히 와인의 종주국인 셈이다. 종주국답게 와인제조법도 독특하다.

포도를 통째로 항아리에 넣고 숙성시키는 크베브리 와인제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가 포도주를 신성(神聖)과 결부시키지만 조지아는 특히 더하다.

포도주를 조상의 피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상의 시신을 포도나무 밑에 묻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지아의 와인 역사는 조지아정교회보다도 오래된 것이다.

조지아에서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은 텔라비이다. 텔라비는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북동쪽으로 50여㎞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알리자니 강이 흐르는 계곡에 위치하는데 동서를 잇는 고대 실크로드의 길목이었다.

이런 까닭에 8세기부터 도시로 발전하였고,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이 지역을 지배한 카헤티 왕국의 수도로 번성하였다.

텔라비에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에는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와인저장소가 있다.

50m 높이의 육중한 모습을 한 대성당은 조지아 동부지역의 영적인 중심지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대성당을 에워싼 성벽은 마치 요새와도 같다. 성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당 주변으로 포도나무가 빼곡하다. 각기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어놓았는데 언뜻 보아도 100여 종에 이른다.

대성당 주변은 무너진 유적들이 널려있다.

16세기 왕이 사용한 여름궁전과 목욕탕이 있던 곳은 아직도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대성당 내부는 육중한 건물에 난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은은한 조화를 이뤄 신성함을 더해준다.

여기저기 회벽 칠이 벗겨진 프레스코화가 햇살을 받아 선명하고 웅장하다. 그 중에는 조지아를 건국한 성 조지가 용을 격퇴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도 있다. 조지아의 역사는 곧 와인의 역사와도 같으니 이곳의 대성당에 건국신화를 표현해 놓은 것이리라.

조지아인들은 포도 수확철인 가을이 되면 너나없이 전통적인 제조법을 따라 항아리를 땅 속에 묻고 포도를 숙성시켜 와인을 만든다.

그들에게 있어서 와인을 만드는 것은 신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조지아의 어디를 가도 인심 좋은 조지아인들이 내어주는 와인과 치즈를 만날 수 있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를 사랑했다. 그는 수시로 와인을 마시며 시를 썼는데, 프랑스 와인보다 조지아의 크베브리 전통 와인을 더 사랑했다.

조지아인들은 언제나 와인을 마신다. 성찬식은 물론 축제나 결혼식 등 실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 잔치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하여 '타마다'라는 주관자를 뽑는다. 행사진행을 맡는 사회자와 같은 것이다. 타마다로 선출되면 축하공연이나 참석자들의 인사말 순서 등을 정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임무는 '건배 제의'다. 와인을 담은 잔을 들어 일치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축제를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다. 조지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각배를 들고 건배를 제안하는 타마다상이 발견되었다. 조지아가 와인의 종주국임을 알려주는 또 다른 유물인 셈이다.

조지아에는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속담이 있다.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제조한 와인이 발산하는 다양한 맛과 향에 이끌려 잔을 내려놓지 못하는 습관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조지아인들을 와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조지아만의 전통적인 와인제조법은 그들의 삶과 종교,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나는 중요한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집마다 있는 와인 저장실은 가장 신성한 장소이며, 이곳에는 언제나 크베브리 와인이 있다. 조지아인의 삶은 와인 그 자체인 것이다.

인천일보 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작가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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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깐지를 들고 건배를 제의하는 타마다를 표현한 청동상


코카서스의 포도가 빚은 명품들

코카서스 지역은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브랜디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브랜디는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이다.

이 브랜디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자존심이다. 왜냐하면 아르메니아인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아라라트를 브랜드 이름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즐겨 마셨다는 아라라트는 동유럽과 러시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명성이 높다.

아르메니아가 조지아보다 브랜디가 유명한 것은 포도의 당도 때문이다. 조지아의 포도보다 당도가 높아서 브랜디를 만들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1945년 얄타회담 때 처칠이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마시고 감탄하자 애주가 스탈린이 처칠에게 1년 동안 마실 분량인 300병을 선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조지아는 와인 종주국답게 유명 와인이 많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제조방식인 크베브리 와인을 최고로 친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페라비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이 유명하다. 조지아인의 와인사랑은 그들의 전설에서도 나타난다. 신이 모든 인간을 소집하였는데 조지아인만 늦게 왔다.

이에 신이 늦은 이유를 묻자, '와인을 마시다가 늦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조지아인들은 결혼식 때 신부 측의 아버지가 500ℓ의 와인을 준비한다고 한다. 또한, 조지아인들에게는 '기뻐서 26잔, 슬퍼서 18잔'이라는 주도법이 있다. 그만큼 와인을 즐기는 민족이다.

와인을 마시는 잔은 '깐지'라고 한다. 염소 뿔로 만든 잔인데 다 마시기 전에는 내려놓을 수가 없다.

조지아는 세계적인 장수국가다. 장수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지방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이 와인을 신성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