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유난히도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내고 난 인사들에게는 누구랄 것 없이 실패의 회한이 깊다. 그 이유를 자신의 실력이 홍보가 잘 안 되어서 그랬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집안 단속만 잘했으면 될 걸 그랬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제 다시 한 번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의 식견이 모자랐음을 부지불식간에 고백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생각하는 막무가내형도 있고.
무릇 권력이란 대체로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물론 자신들은 좀처럼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그 자리에 애를 쓰고 도달한 이유 자체가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끝내 그 욕심을 다 채우고 멋지게 사라진 영웅과 제왕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끝없는 권력의 욕심 또는 야망과 현실의 대결로 점철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대개는 욕심 사나운 권력의 패배로 이어진다. 물론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권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또 다르게 등장하는 가치기준 앞에서 역시 빛이 바래가기 마련이다. 결국은 또 다시 새로운 권력이 창출되고…, 또 다시 사라지고…, 그래서 유달리 권력에 의한 시달림이 많았던 중국인들은 일찍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라는 대중적인 해탈의 언어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인류의 역사가 근대에 이르면서 그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변화가 권력을 더욱 강력하게 제약하는 굴레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하나가 시장(市場)의 등장이고 그 둘째가 시민사회의 성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정리하자면 하나는 효율이고 다른 한 편은 공정 또는 평등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합하기 곤란한 두 개의 가치관이 현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이끄는 핵심논리가 된 것이다. 세상을 통치하는 지배 권력에게는 이러한 모순된 조건을 감수하며 자신의 권력적인 성취감을 만끽한다는 것이 그만큼 더 어려워진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매달려온 입씨름이 소위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의 논쟁이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다툼은 전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분열시켜 왔다. 한 때 수정자본주의라든가 혼합경제체제(mixed economy)라는 형태로 타협이 되는가 싶은 시기가 없지 않았지만, 소득의 양극화와 복지경제의 문제가 정치적인 중심 주제로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또 다시 그 대립이 강화되는 양상이다. 효율과 공정이라고 하는 서로 대립하되 어느 하나를 버릴 수도 없는 인간사회 가치의 두 축이 국가마다 별 뾰족한 대책 없이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 사회 양극단의 파벌적인 대립은 이성적인 합의를 거의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이러한 사회를 통합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권력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일이다. 특히 이러한 갈등을 통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의 노력으로 극복하기보다는 오직 교묘하게 동원되고 조작된 힘에 의해서 장면의 전환을 만들어 온 우리의 정치적 경험을 가지고 이 문턱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때 합리적이고 현명한 권력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또 다시 권력의 입맛에 맞는 집단만을 부추겨 세력화하고 그 힘으로 상대가 주장하는 가치를 무력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수(下手)일 것이다. 먼저 빈틈없이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집중하며, 분석하고 해결할 전문성 갖춘 인재를 골라 투입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엄격하게 검증되고 과학적으로 계산된 국익 우선 이외에 선택할 것이 없고, 인재를 고르는 데 능력과 지혜, 인격 이외에 달리 고려할 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원칙에 의해 오천만의 감동을 끌어내야 하는 이외에 권력이 달리 계산할 것이 없다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릇 동서고금의 실패한 권력들은 모두 전체를 보지 못하고 추종자들의 감언에 얹혀 세상의 뜻을 외면하고 "나의 뜻"만을 우선함에 있어 예외가 없었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알아야 할 만큼 알아야 한다는 것 이외에 무슨 다른 답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부는 그런가. 그들은 지금 우리 경제의 현장을 정말로 잘 아는가. 그들은 미국과 중국, 북한의 사정과 복심을 꿰뚫어 알고 있는가. 누가?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제의 현장은 탁상(卓上)의 서생(書生)이 알기 어렵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외교는 무지할수록 남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다. 알지 못하면서 고집에 집착할 때 미래의 회한이 누적되기 시작한다. 고수(高手)는 힘을 빼는 법이고 권력의 예가 꼭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