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모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외벽에는 알록달록한 유리 모자이크 타일로 이루어진 한글 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벽화의 처음은 이렇다. "지구는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뒤이어 30수의 정겨운 동요가 이어진다. 동요의 노랫말을 메들리로 이어서 5층 건물의 외벽을 기역자 형태로 가득 채운 이 벽화는 2011년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개관할 때 강익중 작가가 설치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를 위해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인 동요 작사·작곡자에 대한 '오마주'이다. 또한 한때는 모두 어린이였던 부모세대와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을 고운 감성으로 따듯하게 이어주는 예술작품이다.

강익중 작가가 어린이와 함께 일구는 문화예술에 힘쓰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99년 헤이리 아트밸리 옆 파주 통일동산에 '십만의 꿈' 이라는 미완(未完)의 작품을 설치할 때였다. 그는 어린이들의 꿈을 담은 '가로 3인치 세로 3인치 그림'을 모아 나무타일로 만들고 이를 이어 붙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다. 그 때는 몰랐었다. 10년 뒤 그와 함께 경기도 어린이 그림 2만5000점과 경기도 밖 어린이 그림 2만5000점을 모으기 위해 새로 함께 애쓸 줄은.(강익중 작가와 함께 만든 5만의 창, 미래의 꿈 Wall of Hope는 현재 경기도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다)
강 작가는 내가 그의 작품과 조우한 1999년 이전부터 한꿈을 꾸고 있었다. "제 꿈은 남북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서 임진강에 평화의 다리를 짓는 거예요. 꿈의 다리죠" 작가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이 어깨동무'와 손잡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북측의 화답은 없었다. 강 작가는 한반도 남녘땅 어린이 그림 5만점에 북녘땅 어린이 그림 5만점이 합쳐져 평화의 다리를 세우는 그 날이 오기를 희구하며 십수년 전 스스로의 바람을 밝혔다.

"통일을 향한 첫 발자국은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이해의 폭은 우리가 티없는 우리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서 함께 미래를 내다볼 때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십만의 꿈'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한국의 평화로운 미래, 더 나아가서는 분쟁 중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우리는 십만 어린이들의 십만 꿈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로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십만의 꿈'이 당장 통일의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작업이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헤어진 가족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한 마음으로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가 꾸었던 큰 꿈의 진전은 더뎠지만 작가는 작은 꿈 모으기를 멈추지 않고 쉼없이 나아갔다. 나는 강익중 작가를 통해 작은 꿈들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에 닿고 마침내 바다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쑥쑥 자라 청년이 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가는 것도 보았다. 작가 또한 화백이 되었다.
작년 가을 그를 아르코 미술관에서 오래간 만에 만났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깨달은 지식과 지혜를 하나의 문장으로 내온 것을 모아 3인치 한글 타일로 만들어 미술관을 '금언의 집'으로 바꾸고 있었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읽어도 듣는 것 같아요.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소리를 내잖아요. 음양이 만나서 아이를 생산하는 것처럼 위대하죠. 예술의 목적이 있어요. 첫째는 연결해 주는 것, 둘째는 흔들어 깨우는 것, 셋째는 치료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한글에도 이런 요소들이 다 들어가죠. 모음과 자음이 만나서 언어로 연결되고, 상상과 철학을 집어넣으면 흔들어 깨울 수 있어요. 또한 통일의 비밀 코드처럼 갈라지는 부분을 이어주는 치료의 효과, 언젠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죠. 중요한 역설입니다." 예전에 그가 한글 작업을 선보이며 밝혔던 말이다.
나는 지난 시간이 궁금하여 그와 함께 인근 찻집에서 밀린 얘기를 나누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작가는 한결같이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 어린이'와 함께 꾸는 그 한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나는 먼 훗날 남북통일이 와도 좋으니, 이번에는 68년만의 종전협정이 체결되어 지금 자라고 있는 어린이, 미래세대에게만은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삶을 보장해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언젠가 강익중 작가의 한꿈이 구현되어 남북 어린이들의 손그림을 즐기며 그 다리 위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