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세상에 나온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처음으로 이 단어를 소개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조 경제, 녹색 혁명 등 공허한 신조어에 막 이력이 나기 시작하던 참이라 시큰둥한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아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딥러닝, 자율제어 등 전문용어들이 일상어로 쓰이기 시작했고 그 실체가 조금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편리하고 스마트하지만 10명 중 4명의 일자리가 바뀐다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상을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리고 있다.

의료분야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일 것이다. 지금은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기억은 못하겠지만 언젠가 동의는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습관과 활동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과 앱을 통해 제공하고 있지만, 이 데이터들은 빅데이터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건강 관리 프로그램, 질병 예측 프로그램, 치료 정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조만간 여러 가지 형태로 당신에게 돌아 올 것이다. 그때 비용을 내라 하면 지불하지 말기 바란다. 그 동안 당신이 무상으로 제공한 정보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스마트폰과 결합된 간단한 착용형 측정기를 통해 혈압, 당 등의 생체 신호를 기록하고 주치의의 긴밀한 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딥러닝 기술을 통해 만든 알고리즘이 간단한 조치나 처방에 대해 조언을 해 줄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런 것을 누리기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이런 것들을 일상적인 진료 형태로 인정하고 정당한 수가를 책정한다. 집에서 진료를 볼 수 있다면 정말 편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보호자 대리방문 처방에 대해서도 법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보면 이뤄지기에 요원한 문제다. 원격진료는 그 한계와 속성 상 의료 제반 시설이 낙후된 곳을 위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 같은 의료선진국보다는, IT에 비해 의료기술이 떨어지는 중국이나 인도에서 먼저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 사회 대책으로 '원격케어' 모습으로 개념을 바꾸어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원격진료의 논란에 함께 묶여 서해5도와 같이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이나 재택 노인, 거동불가 환자들과 같은 취약계층 환자에 대한 원격지원이 지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자신의 유전자를 알 수 있을까? 2003년 게놈 프로젝트에서 한 인간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든 비용은 3조원이었다. 그런데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은 그 비용을 1인당 100만원대로 낮추었다.

이러한 비용 감소 덕에 모든 사람의 전체 유전정보를 모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을 예측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드는 작업에 박차가 가해졌다. 2030년이면 10만원으로 자기 유전자 지도를 알 수 있고 어떤 질환에 취약한지, 무엇을 예방을 해야 하는지, 또 병에 걸리면 어떤 치료제가 자신에게 맞는지 맞춤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만나는 의사들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의사들일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질병에 대해 축적된 엄청난 정보와 지식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의료전문가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알파고 같은 알고리즘 의사결정지원시스템 (decision support system)과 로봇의 도움으로 편하고 안전하게 치료 결정과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완전히 대중화가 되면 그때는 그 사용료를 누가 지불하게 될지 필자도 매우 궁금하다.
의료분야 일자리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직업별 위험도를 분석한 연구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 프레이와 오스본의 논문에 의료분야 직업들은 사라질 염려가 적은 상위 직종에 랭크된다. 특히 사람을 직접 돌보고 정서를 담당하는 상담사나 치료사, 간호사 등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독자적으로 진료를 하는 것은 요원한 이야기일 것이다. 진료가 알고리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월등한 효율을 보이는 시각 처리 및 분석을 이용한 진단 분야에서는 변화가 나타날지 모른다.
멜더스는 인구 증가로 인류가 절멸할 것이라 예언했지만 인류는 폭발적인 1차 산업혁명 생산성으로 이를 쉽게 돌파했다.
4차 산업혁명도 당면한 초고령화, 저생산 사회의 위기를 돌파할 기회를 맞을지 모른다. 의료산업은 사용자(의사), 수혜자(환자), 지불자(정부), 공급자 (업체)가 서로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보통 사용자, 수혜자, 지불자가 같다) 정부는 이를 잘 이해하여 사용자가 드라이브를 걸고 수혜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센티브와 수가 모델을 만들어내어야만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신세계가 멋진 신세계로 그 모습을 드러내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