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은퇴 후 시 쓰기 전념 … 일상서 투영된 풋풋한 서정
▲ 주기찬 지음, 푸른섬, 158쪽, 비매품
교직에서 은퇴한 이후 시작(詩作)에 전념한 주기찬(80) 시인이 3번째 시집, <아버지의 화첩>을 냈다.

시인은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이미지를 구축한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상에서 스쳐간 순간들을 포착해서 역사적 관점을 담아 녹아내고, 우리가 느끼지 못한 농촌의 시골스러운 서정성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또 80세에는 어떠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는 내용의 시집이다.


남실바람이/풀을 스치는/여름 날 오후//수로를/거슬러 올라가며/풀을 뜯는다//고삐를 놓아/시간을 준다//요령(搖鈴)이/바람결에 흔들린다//코뚜레에/바람이 분다//고삐에/억새가 스친다//하늘 향해/몸에서 생겨난/두개의 뿔//머리를 들어/목을 길게 빼고//먼 들판을 바라보며/먼 산을 바라보며//음매-음매-/부르는 소리//메아리에/옛 친구들이 그립다
<소>

<전략>까마득한 별 헤다/파란 꿈/돌 속에 넣었다//자랑은 없고 맹세만 있어/돌은 감격하였다//이제 돌은 돌이 아니고/피가 흐르는 역사다//청소년 두 사람을/국립경주박물관에서/온종일 응시하다//임신서기석이 되었다 <임신서기석>

<전략>아버지는 짜임새가 좋은 옷감이었다. 언행은 신중했고, 사심이 없고 양심적이었다. 생활이 계획적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셨다.//아버지, 어머니는 우리의 나무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의 봄이었다.//기쁨과 보람과 얼룩이 배어 있는 어버지의 화첩.
<아버지의 화첩>


시집은 해녀의 아침과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녹차 밭으로 가는 길, 바다의 숨결, 신라의 미소 등 모두 5부로 구성, 풋풋한 서민적 서정을 느끼게 하는 75편의 시를 실었다.

조우성 시인은 "역사선생 출신이다보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삶에 대한 반추를 통한 관조, 탄탄한 언어구조로 명징하게 이미지를 구축해 가는 것, 이런 건 보통솜씨가 아니다"면서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쓴 '아버지의 화첩'은 가식이 없는 풋풋한 원형적인 서정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난 시다. 어렵게 쓰려고 한 시가 아니라 삶 속에서 투영된 삶을 되돌아 보면서 나름대로 시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고 시평을 했다.

이어 조 시인은 "예술은 사랑과 평화의 산물이며, 삶 속에서 맞닥트리는 죽음과 고통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 "나름대로 삶을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책으로 남긴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삶을 넘어서는 자기 기록이자, 인천 지역 사회 문학에 조그만 공간을 마련한 것도 된다"고 덧붙였다.

주기찬 시인은 자서에서 "시를 통해 넘으려는 미지의 세계 자체가 어쩌면 또 하나의 벽인지도 모른다"면서 "그것에는 선택이 따로 없다. 혹 내 앞에 전개돼 있는 벽을 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그 너머의 무지개를 꿈꾼다"고 시를 쓰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주기찬 시인은 1939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양정고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대학 시절부터 시를 써 왔으며, 시집 <모퉁이 황톳길(2008)>과 <네가 세상에 있는 줄 몰랐다(2011)>가 있다. 대학 1학년 때 4·19혁명에 가담했으며, 1966년부터 1967년까지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

대헌중학교, 광성고등학교 교사와 교감을 거쳐 광성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현재 학교법인 충렬학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