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영화제 '프랑스에서...' 상영한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
▲ 난민들의 사적인 생활을 조명한 영화 '프랑스에서의 한 철'의 감독 마하마트 살레 하룬.
내전으로 망명했던 유년 시절 겪어
누구보다 현실적인 작품 표현 가능

디아스포라 우리 주변 일로 인식을






"제가 영화감독을 왜 시작했냐고요? 9살에 삼촌을 따라 영화관을 처음 가봤어요. 그때 발리우드 영화를 처음 접했고, 큰 스크린에서 여배우가 웃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영화의 매력에 끌렸어요."

수줍음이 많고, 영화를 보며 혼자 놀기를 좋아했던 소년. 카메라를 잡는 법도,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도 배운 적 없는 그는 자신만의 색을 담아 영화계에 발을 내딛었다.

첫 번째 장편 영화 '바이 바이 아프리카'를 시작, 2010년 '절규하는 남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11년엔 칸 영화제 공식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또 2013년 '그리그리'로 발칸 촬영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6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장편 '프랑스에서의 한 철'을 들고 나타난 마하마트 살레 하룬(58) 감독의 얘기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은 1961년 아프리카 공화국 차드에서 태어났다. 어린나이에 내전을 겪었던 그는 디아스포라 문제에 그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1982년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치게 됐어요. 겨우 아버지에게 업혀 강을 건너 프랑스로 도착했어요. 이후 프랑스로 망명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죠.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던 도중 지인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남을 수 있었어요. 운이 좋은 경우였죠. 이후 프랑스에서 영화학교와 보르도 저널리즘학교를 졸업했어요.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에 돈을 벌기 위해 1989년부터 6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죠."

그의 기억들은 이번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 상영작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난민들의 사적인 생활을 조명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탈출해 두 자녀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온 압바스, 고향에서는 존경받는 교사였지만 프랑스에서 난민 자격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애인 캐롤 덕분에 잠시나마 삶의 위안을 얻지만, 난민 자격이 불허돼 추방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어느 날 기사를 보다가 한 난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는 글을 봤어요. 그걸 보고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됐죠. 난민들의 위험천만한 삶을 영화로 많이 다루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배회하는지 그들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 영화는 드물어요. 그래서 그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영화 안에 담고 싶었어요."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울감이 감도는 한편,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금붕어, 자장가와 같은 다양한 장치들을 설정하기도 했다.

특히 압바스의 연인 캐롤의 생일파티 장면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신이다. 4분 동안 카메라 움직임 없이, 컷을 하지 않는 감독의 롱테이크 장면은 관객들에게 난민들의 현실을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난민'이라는 어느 한 무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 영화제는 전 세계 최초로 디아스포라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죠. 그래서 꼭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유년기의 기억이 중요하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마음가짐과 추억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점이라고 한다. 그는 이것을 '기억의 냉장고'라고 비유했다.

"예술가는 각자 기억의 냉장고가 필요해요. 작품을 만들 때 추억을 하나하나 꺼낼 수 있는 그런 냉장고요. 이것은 꿈을 키우는 원동력이 돼요. 특히 유년기에는 무엇이든 온 마음을 다했던 기억이 있어 영감의 원천이 돼요. 저도 그랬고요."

/이아진 수습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