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또 다시 오월이다. 일 년 중 가장 푸르름이 빛나는 시절. 이즈음 떠오르는 글 피천득의 <오월>은 오월을 나타내는 압권이다. 내가 중고교생이었을 무렵 배웠던 이 글의 여운이 수십 년이 흐르도록 나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는데….
한국을 대표했던 서정문학인 피천득은 평생 소년처럼 살다가 2007년 향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수필 <인연>은 한국인의 가슴에 순수하고 아린 사랑의 환상을 심어 놓았다. 어린 시절 짧은 순간 머물던 어린 여자 아사코에 대한 환상을 평생 놓지 않고 그리워했던 작가의 우직한 순수성을 독자들은 가슴 아리게 추억한다.
오월이 되면 신록, 인연, 아사코…. 그리고 피천득이 남긴 글귀가 생각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일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지금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이 가고 있다.

/권영준 시인·인천 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