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아내는 두 개의 말(語)을 쓴다. 하나는 고향 제주말, 다른 하나는 '표준말'. 스물여섯 나이에 뭍으로 와 매끄러운 서울말을 구사한다. 하나, 제주 섬에 드는 순간 서울말은 버리고 제주말을 취한다. 이따금 쓰는 모어(母語)지만 여전히 완벽에 가깝다.
30년 가까운 '육지사위' 노릇에 이젠 제주어가 귀에 와 닿는다. 말하는 건 시늉뿐이지만 뭔 얘기를 하는지는 헤아린다. 덩달아 토박이들과의 거리도 좁혀졌다. 이따금 내뱉는 어설픈 제주말에 박장대소하는 벗들이다.
2010년 무렵부터인가. '제주 말 소멸 위기'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모든 언어는 생성과 성장, 소멸 과정을 거치니, 제주말이라고 예외일 순 없던 것. 다만 빠른 속도로 스러져가는 데는 그만한 환경·인위적 요인이 작용했다. 짧은 시간 뭍에서 몰려든 이주민들과 대규모 개발 열풍을 가냘픈 제주말이 견디기 어려웠을 거다.
국가의 표준어 정책도 한 몫 한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은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했다. 그 밖의 말들은 말들의 영토에서 추방했다. 정겨운 호남말이나, 둥글고 순한 제주말 등은 버려야 할 고물 신세다. 이쯤 되면 백석의 시편(詩篇)은 너무 멀어 외래어에 가깝다.
평론가 김현과 저술가 고종석은 '말들의 풍경'이란 같은 제목의 책을 썼다. 굳이 같은 제목을 취한 건 말들의 아름다움 때문일 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말로 세계를 인식한다. 말로 세계에 이름 붙이고, 개념과 의미를 만든다. 이는 널리 번져 공감하고 공유돼 고유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어디든 마찬가지로, 제주 역시 고유한 말로 제주를 표현하고 전한다. 제주말이 곧 제주 문화의 원천이자, 정체성의 근거다. 올레가 그렇고 곶자왈, 오름, 뱅듸 등이 그렇다.
몇 년 새 스러져가는 제주말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공부문과 일부 언론도 나섰다. '외지인'을 위한 '제주어 학교'도 생겼다. 좋은 일이다.
차제에 제주를 찾는 이들도 제주말을 몇 마디쯤 익히면 좋겠다. "어듸 강 제줏말 몰르민 제주사름이렌 못을 거"라는 게 제주사람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