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최근 들어 종편 jtbc를 즐겨 본다. TV와는 거리가 먼 터, 이례적인 일이다. 변화가 생긴 건 '효리네 민박(민박)' 때문이다. 주말이 끝나갈 무렵인 일요일 밤 9시는 헐거운 시간. 저녁상도 일찌감치 물렸겠다. 단출한 세 식구가 함께 TV를 보기 좋은 시간이다. 이른바 '리얼리티 예능'인 민박은 지난해 시즌1 시청률이 5.8~10%를 기록했다. 올해 시즌2 역시 7.1~10.8%로 고공행진 중이다.

허다한 방송채널의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중 민박에 빠져든 이유는 편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이는 과장과 작위성이 적다. 제작진은 끼어들지 않음으로써 민박집 주인 부부와 알바생, 투숙객, 심지어는 반려견과 반려묘까지 두루 돋보인다. 이에 더해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건 민박집의 기본. 도처에서 온 투숙객들의 사연까지 뒤섞이며 화면은 에피소드와 '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소확행)으로 충만하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요소는 '민박집의 시간'이다. 그 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뭘 하든, 누구든 느긋하다. 시간이 남아돌아 그야말로 시시한(?) 놀이로 남아도는 시간을 소비한다. '가속' 또는 '과속' 사회라는 말은 민박집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사는 현대인 삶의 배후에 작동하는 시간 체제에 주목한다, 이른바 가속(加速)의 세 가지 형태, 즉 기술적 가속과 사회적 가속, 생활리듬의 가속이다. 논리대로라면 기술적 가속으로 삶은 더욱 여유로워야 한다. 하나, 되레 더 바빠졌다. 시간이 준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덕에 빨리 이동할 수 있지만,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기술적 진보로 누릴 게 많아지며 TV와 컴퓨터, 소비, 레저·스포츠 등 사이를 방황하며 시간을 소비한다. 일상에서 물러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은 가물어가고, 급한 불끄기에 급급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삶, 그 속에서 무력감과 체념이 깃든다. 이에 로사는 다시 말한다.

시대 흐름에 주도적 통제권을 확보하려면 '시간이 돈'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그러려면 놀이와 무위의 시간을 되찾고, 시간을 '낭비'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라고. 그리 보면 민박집은 로사가 말한 '시간낭비'를 위한 하나의 본보기일 수 있겠다. 내가 그리 보내는 게 아닌 구경꾼이란 게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