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시·노래·소설 속 '여성'을 보다
▲ 박혜숙 지음, 소명출판, 349쪽, 2만6000원
한국 고전문학의 주요 장르와 텍스트를 여성적 시각에서 살펴본 책. 고전문학 각 장르에 나타나는 타자적 존재로서의 여성현실, 100년 전 제기된 평등의 페미니즘과 차이의 페미니즘의 상호연대, 시대별 성별 정체성의 문제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여성영웅소설 <방한림전>에서 100년을 앞서는 '차이-평등 페미니즘'의 전략적 연대를 밝히는 등 한국 고전문학을 더욱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구현해내며, <덴동어미화전가>의 보다 완벽한 복원을 통해 한국 고전문학 연구의 외연과 내포 모두에서 확장된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한국고전문학의 주요 장르와 텍스트들을 여성적 시각에서 살핀 연구들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 구성했다.

제1부는 '고전문학 장르와 여성'이다. 서사한시, 고려속요, 여성영웅소설이라는 주요 한국 고전문학 장르의 여성담론을 여성적 시각에서 거시적이고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유명 작가들에 의해 창작된 서사한시 작품에서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현실이 어떻게 구현되거나 어긋나는지,'가시리'를 비롯한 고려속요에 형상화된 정한(情恨)의 세계나, '정과정곡'에서 비롯되어 조선시대 '사미인곡'에까지 연결되는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辭)의 전통이 여성을 타자화(他者化)하는 '타자성의 미학'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조선후기에 양산된 여성영웅소설이 평등과 차이, 여성적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제2부는 '여성의 자기서사'이다. 저자는 먼저 '자기서사'라는 개념, 요컨대 화자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그것이 사실이라는 전제에 입각하여 진술하며, 자신의 삶을 전체로서 회고하고 성찰하며 그 의미를 추구하는 글쓰기 양식이라는 것을 정의한다. 따라서 '자기서사'는 단일한 장르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주변적 존재이므로 여성의 자기서사는 남성의 자기서사와 달리 한 사람의 여성이 여성 집단의 일원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문제 삼는 일은 필연적으로 당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적 정체성 일반을 문제 삼는 일과 연관된다.

제3부는 <덴동어미화전가>를 복원하고 여성문학의 시각에서 살핀 '덴동어미화전가의 세계'이다. <덴동어미화전가>는 전통시대 한국 가사문학의 수작(秀作)일 뿐 아니라, 한국 여성문학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이다. <덴동어미화전가>는 조선 후기 하층 여성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을 실감나게 그려놓고 있어서, 그 문제성과 리얼리티에 있어 서민가사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연구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하층민의 삶을 반영한 측면에 주목하거나, 덴동어미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에 주목하는 입장에서 논의를 펼쳤다.

저자는 덴동어미는 하층민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여성이면서 하층민'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세 번 개가(改嫁)하고 네 번 상부(喪夫)하며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기구하고 간난(艱難)한 덴동어미의 삶은 당대 하층여성의 삶과 상당한 보편성을 지닌 의미가 있음을 분석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