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개심사를 다녀왔다. 이맘때면 해거름녘에 털레털레 찾아갈 만한 곳이다. 직선도로를 바로 달려 닿으면 절집이 아니라고 했던가. 큰 길을 내려서도 저수지 두개를 끼고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야 모습을 드러낸다. 가는 길, 한 때 JP목장으로 불렀던 광활한 목초지도 구경거리다. 절집답지 않게 겹사쿠라가 만개해 있어 꽃대궐의 풍경이었다. 전국의 벚꽃잔치가 다 파하고서야 뒤늦게 피는 벚꽃이다. 흰벚, 분홍벚만이 아니다. 도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청벚, 홍벚까지 맘것 꽃송이를 열어 터뜨리고 있었다.

▶처음엔 절 이름에 발길이 끌렸었다. 개심(開心)이라니, 마음 열기가 어디 쉬운가. 어느 큰 스님인지, 마음 열기를 화두로 삼아 끙끙대며 절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속세에 찌든 주제에 개심의 경지는 가늠조차 벅차다. 요사채 마당 한켠의 선홍빛 벚꽃이 오래 발길을 묶는다. 저 겹사쿠라의 활짝 피어남이 바로 그것인가.

▶남의 나라 선거도 좌와, 우 어느 편이 이겼는지가 늘 관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관전법이 의미를 잃을 모양이다. 유럽의 어느 석학이 진단을 내놨다. 프랑스 등 유럽 정치에서 이제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은 종언을 고했다고. 이제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개방과 폐쇄가 이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폭정의 전제 왕정을 처음으로 몰아낸 그들이 아닌가. 2백년 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지혜라면 귀담아 들을만 할 것이다. 벌써 우리도 어렴풋이 느끼지 않는가. 선거철이 열려도 떠들어 대는 정책들이 거기서 거기다. 무엇이 열린 사회이며 닫힌 사회인가.

▶"장관들의 대면 보고가 꼭 필요하다고 보세요" 이는 명백히 닫힌 사회의 얼굴일 것이다. 골박, 진박, 뼈박, 원박, 먼박…. 2년 전 총선판에서 펼쳐졌던 코미디도 영락없는 닫힌 사회의 징표들이다. 나와, 그리고 출신성분이 같은 내 족속들이 저지르면 것이면 다 옳고 이유가 있다? '내로남불'은 닫힌 사회의 절정을 보여준다. 식구 딸린 어른들이 대낮에 어두운 골방에서 댓글만 달고 있으면 닫힌 인생일 것이다. 드루킹의 아파트 현관에는 CCTV 외에 자물쇠가 4개씩이나 달렸다던가. 닫히고 또 닫힌 무엇이다.

▶사바세계는 이 세상 다하도록 시끄러울 것이다. 그래서 개심(開心)도 늘 공염불에 머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새 봄에 한번씩 돌아보자. 우리 인천은 열린 고장인가 닫힌 고장인가.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또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