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 고구려산성 답사 … 사진·지도·민담까지 담아
▲ 원종선 지음, 통나무, 520쪽, 2만3000원
"이 책은 원종선이 요동반도에 있는 73개의 고구려산성을 두 발로 답사한 기록이다. 아주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식의 사진첩이나 여행기는 있으나, 이와 같은 치열한 현장답사기는 유례가 없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학교 석좌교수는 이 책의 '서(序): 민족사의 새벽을 열다'에서 저자의 노력과 열정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고구려의 실상을 그 유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자연히 고조선의 실체도 리얼하게 느낄 수 있다. 고구려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려가 황제국이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새롭게 눈을 뜰 수 있다. 고려의 실체를 알게 되면 조선왕조에서 이루어진 왜곡의 역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이 책이 가진 의미를 강조했다.

저자 원종선은 고구려산성의 조사를 위해 아예 요동반도의 끝자락 대련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요동 고구려산성 하나하나를 자신이 찍은 수많은 현장사진을 보여주며, 고구려인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직접 지도도 그려 활용한다.

중국학자들의 연구 자료도 참고했고, 지역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지에서 통용되는 지명, 전해오는 민담까지 담아냈다. 일제가 우리 강토 강점의 야욕을 드러내는 시절부터 많은 학자들이 고구려성의 존재를 확인해왔으나, 한·중·일을 통틀어 이만큼 철저한 탐사기록을 담은 책은 없었다. 이 책은 요동 고구려산성의 현재적 상태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보존상태가 좋아 고구려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산성이 있는 반면에, 이미 자취가 사라져 이름만 남은 성 터, 그리고 훼손 중에 있는 많은 산성들의 안타까운 정황이 잘 드러난다.

우리가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을 그대로 보존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 현재의 상태를 증언하는 기록이라도 후세에 남기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고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현재 요동에 남아있는 지역 이름만이라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조사에 의하면, 요동 곳곳에 고려성산이라는 산 이름이 흔하다. 고구려성이 있던 산을 요동에선 예로부터 '고려성산(高麗城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현지에서 앞으로는 그 이름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비록 이 책이 어느 고구려산성 성벽의 훼손을 막을 순 없어도, 현재의 시점에서 그 산이 고려성산이라는 명칭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길 수 있다. 그것만 해도 이 책은 먼 미래 우리 민족사에 크나큰 보배가 될 것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