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학생지원처장
교육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운영지침은 입학 전 신입생 OT는 반드시 대학이 주관하여 가급적 1일 내에 완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법적 근거없는 OT 비용 징수를 금지하고, 학교예산으로 운영하여 공식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정착시킬 것을 요구한다. 정부의 행정지도로서 사립대학이 이 지침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이에 맞서 학생회측은 신입생 정보제공과 학생 간 소통 강화, 공동체 의식 고취 등을 위한 교외 OT를 고집하며 교육부 지침을 준수하려는 대학당국의 입장을 자치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간주한다.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창조적 대안의 모색은 어려워 보인다. 새내기를 맞이하는 대학의 옥신각신 진풍경이다.

당초 대학본부측은 2월 교내 신입생 OT를 하려고 했고, 학생회측은 관행대로 2월 교외 신입생 OT를 고집했으나 결론은 2월 교내 신입생 OT에 3월 교외 단대 연합 MT를 결합하는 절충안으로 모아졌다. 대학본부측은 '입학 전 교내 OT'라는 명분을 취했고 학생회는 '입학 후 교외 단대 연합 MT'라는 실리를 챙긴 것이다. 이렇게 2018학년도 신입생 OT 관련 대학당국과 학생회측과의 줄다리기는 호혜적 협상의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양측이 협상이익 비양립성의 편견에 사로잡힌 듯 도무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실제로 양 당사자가 공통된 협상이익을 갖고 있어 합의가능영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혀 다른 협상이익을 갖고 있어 호혜적 합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을 깨뜨린 것은 쟁점의 재정의를 통한 합의가능영역의 형성 노력이었다. 교육부가 금지를 권고한 것은 입학 전 학교 밖 OT이지 입학 후 대학생 집단연수가 아니어서 입학 전 OT는 학교당국 주도로 교내에서 하루 일정으로 하되, 이에 더해 단과대학 및 학생회 주도의 입학 후 단대별 연합 OT가 안전하고 건전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시되어 합의가능영역이 형성된 것이다.

신입생 OT 협상은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측면에서 볼 때 학교당국에게 유리한 협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생회측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얻어낸 협상이었다. 배트나는 협상자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택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대안을 말한다. 좋은 배트나를 가지면 가질수록 강한 협상력을 갖고 좋은 협상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학교당국은 대학본부 주최의 입학식 겸 신입생 OT를 하는 대안을 갖고 있었지만, 학생회는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 없는 '장외투쟁'이라는 대안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배트나 측면에서 볼 때 처음부터 학교측에 결코 불리한 협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학교측은 학생회측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소위 끼워넣기(nibbling)가 종종 발생한다. 니블링은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작은 것 하나를 더 받아내는 술책을 말한다. 어느 정도 협상이 완료되어 돌이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싶으면 슬그머니 이것저것 끼워넣는 시도를 한다. 이럴 때 난감하지만 그래도 상대를 배려하고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에 응하게 된다. 하지만 니블링은 단기적 이익은 몰라도 결국 양측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측이 어렵게 섭외한 접근성과 시설 좋은 MT장소를 고사하고 멀고 시설도 낙후된 곳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택할 수 있게 요구한 일부 학생회측의 행동은 비록 단기적 이익은 챙겼을지 모르나 스스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고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악역과 선역 협상전략의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협상전략의 대표적인 예는 경찰의 피의자 심문이다. 악한 역과 선한 역을 맡은 두 명의 수사관이 번갈아 피의자를 심문한다. 악역 수사관은 거친 행동을 서슴지 않고, 마실 것조차 주지 않는다. 반면 선역 수사관은 상대를 이해하려 하며 따뜻한 태도로 대한다. 이 경우 피의자는 선역 수사관에게 마음을 열고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당국이 학생회측과 소통을 추구하면서 전략적으로 이러한 역할분담을 고려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대학본부는 상대적으로 원칙과 명분을 지키려는 입장에 가까웠다. 이에 비해 학생지원팀과 단과대학 행정실은 학생회측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생회측은 대학본부와는 예의를 갖추되 강경한 자세로 협의에 임했지만, 학생지원팀과 단과대 행정실과는 정서적인 공감 하에 진솔하게 소통을 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완충지대'가 있었기에 신입생 OT 협상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