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불러낸 12세기 로빈후드
▲ 하워드 파일 지음,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 464쪽, 1만3800원
단편 전설 모아 재구성 … 권력자 비리·수탈과 계층갈등, 익살스럽게 시사


사람들은 '로빈 후드'하면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아마도 활을 쏘아 과녁에 박힌 화살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는 장면을 연상할 것이다. 또는 셔우드 숲을 근거지로 신출귀몰하며 악한 귀족들을 혼내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책은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로빈 후드에 대한 완전한 이야기를 전한다.

로빈 후드는 도적이지만 우리는 그를 의적이라 부른다. 그는 힘없는 사람들은 돕고, 힘 있는 자들만 괴롭히며 권력층에 대항하는 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는 로빈 후드와 그의 동료들이 벌이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며 통쾌한, 때론 진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푸줏간 주인으로 변장한 로빈 후드가 그의 최대 숙적인 노팅엄 주장관에게 원수 갚는 장면, 노팅엄 주장관 휘하에 있으면서 겪은 리틀 존의 모험, 숲의 만찬을 즐기며 후한 값을 치른 헤리퍼드 주교 이야기 등 다양한 일화들이 한데 묶여 한 사람이 겪은 모험은 다른 사람의 모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다음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빈 후드가 살던 12세기로부터 9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권력자들의 비리와 압제와 수탈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권력자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부정 축재를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계급제도가 폐기 됐음에도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계층이 분리되어 있다. 그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있다.

21세기 우리의 상황이 12세기 잉글랜드 상황과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씁쓸해해야만 할까? 아니면 우리의 상황을 바꿔줄 '로빈 후드'가 나타나기를 기대해야 할까? 혹은 우리가 '로빈 후드'가 될 수는 없을까? 모든게 여의치 않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아직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로빈 후드는 귀족들을 약올리거나 어려움에 닥쳤을 때 뿔나팔을 불었다. 그러면 100여명의 건장한 동료들이 곧바로 나타났다. 로빈 후드는 그들과 함께 상황을 해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권력자들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역사는 늘 그렇게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책은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의적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로빈 후드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미국 삽화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워드 파일(Howard Pyle)의 첫 작품이다. 작가이자 삽화가인 파일은 전설 속 인물인 로빈 후드를 현대로 불러냈다. 파일은 로빈 후드의 전설에 대한 여러 단편을 모아 재구성하여 1883년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파일 이전에 로빈 후드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중 민요 형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파일은 주로 퍼시의 <유집>과 조지프 리츤의 <로빈 후드 민요 모음> 등을 참고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파일의 원작을 완역했고, 그 본문에 수록된 그가 직접 그린 삽화도 그대로 담아 원작을 충실히 옮겼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