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의지로 거기 있다. 거기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조종당하고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사경을 헤매고 있고 순전히 내 의지로 기적에서 깨어났다. 순전히 내 의지로 눈이 내린다. 순전히 내 의지로 모르는 명단에 있다. 거기서 정착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힘든 일인지는 순전히 내 의지로 모른다. 알아봤자 모르는 사람들이 순전히 내 의지로 들어왔다가 나간다. 순전히 내 의지로 기억되고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줄을 서고 멈출 수 없다. 순전히 내 의지로 기차가 온다. 순전히 내 의지로 버스는 출발했고 비행기는 멈춰 있다. 순전히 내 의지로 무관하고 무의미하고 무성의하고 어쩐지 축제 같다. 아침마다 오는 발기의 순간도 순전히 내 의지로 감퇴했다. 짜릿하게.


우리는 얼마만큼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시의 논법대로라면 모든 것은 '순전히 내 의지'로 이루어진다. 순전히 내 의지로 기차가 오고, 버스가 출발하고, 비행기는 멈춘다. 심지어 지구도 '순전히 내 의지'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의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없다. 그러나 이 시를 계속 읽다보면, '순전히 내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내 의지와 '무관하고 무의미하고 무성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자유의지의 유무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지만 김언 시인은 또 다른 차원에서 '자유의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자유의지'는 마치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곧 '의지가 없는, 무의미한 상태', 그러니까 무성의하게 피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비꼬고 있는 듯하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순간순간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인'일까? 실제 우리는 '자유'와 '의지'를 모두 잃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자유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시'이다.
/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