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듯 강렬한 추억의 맛
늘 그자리에 있어 더 반갑다

 

애관극장 매각설에 결성된 모임 '애사모'
"역사지켜야 하는 이유, 냉면에 담겼네요"

▲ '애사모' 회원들이 경인면옥에서 평양냉면을 맛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안수 매니저, 이희환 연구위원, 고동희 극작가, 민운기 대표.



"애관극장과 같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인천시민들의 애환을 함께한 문화적 유산이 경영난으로 개발업자 손에 넘어가 극장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합니다."

올해 초부터 불거진 애관극장 매각설에 '애관극장은 지켜야한다'는 성명을 내고 카카오톡에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이라는 '단톡방'을 개설하며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민운기 문화공간 '스페이스 빔' 대표, 고동희 극작가, 이희환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신안수 '추억극장 미림' 사업부 매니저 등이 70년이 넘은 평양냉면집 '경인면옥'에 모였다.

"애관극장을 지켜내는 일이야 말로 인천시민의 자존심을 지키는거지요. 첫 성명을 냈을 때 30분이 되지않아 350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하겠다고 온라인 서명을 한 사실만 봐도 애관극장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을 잘 알 수 있지요."

이날 모인 이들은 신문지면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인천의 문화나 예술은 물론 주민들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현장을 지켜온 대표적인 인물들로 언제든지 포럼이나 세미나를 열어 주제발표를 하거나 패널로 참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서울의 허리우드 극장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지원을 받아 '허리우드 클래식'이라는 실버세대를 위한 고전영화 상영관으로 변신했고 광주 충장로의 '광주극장'은 400명이 넘는 후원회를 조직했는데 그중에는 독지가가 참여해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 위원이 다른 지역의 오래된 극장이 살아남은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자 자연스럽게 '추억극장 미림'의 현재 운영상황이 궁금해졌다.

"미림극장도 쉽지는 않죠. 직원들은 즐겁게 일하고 어르신들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점은 고무적이기는 하나 건물주가 민간인이라서 언제 매각할까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죠. 다행히 의식있는 분이 미림극장을 매입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됐지만 극장주변이 원도심으로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동인천르네상스'니 하며 재개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미림극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이 드는건 어쩔 수 없어요."

신 매니저가 미림극장을 운영하며 겪고 있는 경험을 얘기하자 고 작가가 애관극장의 활용방안에 대해 인천시와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며 나섰다.

"애관극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장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해온 탁경란 대표의 노고와 공로는 인정받아 마땅하고 인천시나 시민들이 찬사를 보내야 하는 건 맞아요. 사실은 2002년인가 애관극장의 미래에 대해 '연극전용극장'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인천시와 함께 상당히 진척됐었어요. 그런데 그 때 탁 대표는 극장경영이 힘들고 어렵지만 본인이 운영하겠다고 고사한적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매각위기에 처했다면 어떻게든 지켜서 한때 유명했던 '무성영화 전용관'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고 작가의 '연극전용극장'이나 '무성영화 전용관' 등의 대안을 듣고 민 대표는 '애사모'에서는 애관극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거들었다.

"현재는 애관극장 측의 입장을 확인하는게 급선무에요. 누적된 부채 때문에 어쩔수 없어 매각의사가 정말 있는지, 아니면 인천시나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아 극장으로써의 위치를 지킬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게 중요하죠. 처음 애관극장 매각설이 나왔을 때 '애사모'에서는 '애관극장에서 영화보기'나 '애관극장을 살리자'는 피켓팅이나 인천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해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결국은 애관극장이라는 사유재산 주인의 입장이 중요한데 확인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이날 모인 '애사모'의 주요인사들은 애관극장이 지역에서 갖는 상징성이 소중한 만큼 민간영역에서는 애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입혀서 활용하고 인천시나 공공의 영역에서는 필요하다면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애관의 공공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애사모' 회원들이 '경인면옥'에서 애관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아마 '경인면옥'이 70년 넘게 한자리에서 평양냉면으로 자리를 지켜온 것처럼 애관극장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그 집'의 추천 메뉴는 …
 

▲ 경인면옥의 대표 메뉴 평양냉면.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경인면옥'과 70년이 넘는 역사를 함께 해온 대표음식이다. 소고기 한우 1등급이상만 사용하는 육수는 소 뒷다리인 설깃을 넣고 2시간 정도 끓인 뒤 간장, 생강, 마늘을 넣어 다시 2시간을 끓여 소금으로 간을 한다. 면은 메밀 65%에 전분 35%를 섞어 직접 뽑는데 부드럽게 툭툭 끊어지는 면의 식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평양냉면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려면 최소 세차례 이상 맛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조금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다. 수십년간 놋그릇에 담아내는 고집을 지켜온 경인면옥 평양냉면은 메밀향과 육수가 어우러져 담백하고 구수한 향이 난다. '평양냉면 좀 아는' 애호가들도 가히 인정할 만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100% 녹두만 사용한 녹두지짐이


●녹두지지미(녹두지짐이)

밀가루 또는 찹쌀가루 등을 섞지 않고 100% 녹두만을 사용하고 돼지고기는 갈아서 넣는다. 따라서 약간은 거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씹을수록 본연의 녹두맛을 볼 수 있다. 특히 빵가루나 부침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마치 팬케이크 같은 식감에 아이들도 좋아한다.

걸쭉하거나 강렬한 돼지기름 냄새도 없고 겉은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경인면옥의 3대사장인 함종욱씨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완성한 레시피'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국내산 최상급 돼지고기를 부드럽게 삶아낸 편육.


●편육·손찐만두

 


편육은 국내산 1등급 이상 암퇘지만을 사용한다. 돼지고기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데 경인면옥은 1등급 이상 최상의 고기만을 엄선해서 쓰고 있다. 부드럽게 삶은 편육은 고춧가루와 식초 등을 넣어 맛을 더한 새우젓에 찍어 먹거나 냉면에 싸서 먹어도 그만이다.

손찐만두는 국내산 재료만을 사용하여 매일 직접 만든다. 만두소에는 돼지고기와 한우가 1대1의 비율로 들어간다. 만두는 주문과 동시에 찌기 시작하기 때문에 10분가량 기다려야 한다. 함원봉 사장 시절에는 돼지고기만 넣었는데 함종욱 사장이 한우를 더하면서 달달하고 부드러워졌다. 지키면서 변화하는 '경인면옥'의 내공을 잘 보여준다.




하루 1000그릇 팔렸던 비결은 바로 '고집'
모든 식재료 '직접 배합' … 깐깐한 옛날 방식 고수

 

 

 

 

 

 

▲ 70년 역사를 간직한 '경인면옥' 테이블 매트엔 1940년대 신포동 풍경사진이 담겨있다. '경인식당'이었던 당시 위치를 화살표로 표시해 놓았다.


'경인면옥'은 1946년부터 3대째 평양냉면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 집이다.
인천 중구 경동사거리에서 신포동 패션거리로 들어가는 초입,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경인면옥'은 메밀면이나 만두소 등 모든 음식의 재료를 주인장이 직접 배합하는 옛날방식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70년이 넘게 맛을 지켜온 비법이다.

깐깐한 조리방법에 고향의 향수와 맛이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는 인천의 살아있는 음식역사로 2015년부터 3년동안 맛집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블루리본'을 세개 받았다.

인천에 있는 '경인면옥'의 뿌리는 평안도 신의주가 고향인 3형제가 1944년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부근에서 개업한 '종로평양냉면옥지점(鐘路平壤冷麵屋支店)'이다.

종로의 평양냉면 집이 번성하자 셋째인 함용복씨가 인천에 새롭게 냉면집을 차렸다. 인천에는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냉면집이 될거라는 판단에서다.

1946년 개업할 때는 지금 건물의 맞은편에서 시작했고 이름도 서울과 인천을 묶어 '경인식당'이었다. '경인면옥'의 테이블 매트에는 그 무렵의 사진을 담아 화살표로 '경인식당'을 표시해서 보여주고 있다. '경인식당'은 1988년 무렵, 지금의 건물로 확장, 이전하면서 '경인면옥'으로 식당이름을 바꾼다.

2대 사장 함원봉씨가 경인면옥을 맡은 건 81년부터. 이미 70년대 초반 문을 닫은 종로 평양냉면집 대신 인천 '경인면옥'은 지켜야 한다는 집안 어르신의 압력(?)과 연로하신 부모님이 식당일을 힘들어 하시자 당시 보석, 악세사리 수출입 사업을 하던 함원봉씨가 물려 받았다.

함원봉씨는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주방일을 했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식당을 맡았어도 음식 만드는 일에 큰 어려움이 없이 적응 할 수 있었다.

현재 '경인면옥'을 운영하고 있는 함종욱 대표도 가게를 맡게 된건 아버지와 마찬가지다. 경영학 공부를 하고 중국과 유럽을 상대로 보석, 장신구를 수출하던 그도 결국 2012년부터 '경인면옥'을 물려받아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에도 오래된 냉면집은 대부분 북에서 온 실향민들이 창업했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유명한 중국음식점들이 화교와 그 후손들이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경인면옥'은 1970년대 한창 잘될 때는 하루에 냉면 1000그릇 파는게 목표였을 정도로 평양냉면이 유명했다. 지금도 평양물냉면을 비롯해 평양비빔냉면, 평양회비빔냉면, 평양온면 등 면류와, 냉면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돼지고기편육, 녹두지지미, 손찐만두가 인기다.

그외에도 갈비탕, 육개장, 경인비빔밥, 경인불고기, 불고기세트, 냉면세트 등의 다양한 메뉴가 있다. 032-762-5770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