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논설위원
일곱 살 외동딸의 손을 잡고 박물관 언덕길을 오른다. 작은 손을 감싸쥔 손과, 손 안에 들어온 손이 교감하며 아빠와 딸은 하나가 된다. 새파란 하늘과 겨울바람. 들뜬 아이의 양 볼이 노을처럼 붉어진다. 언덕길을 따라 기울어 서 있는 포장마차에선 버터냄새가 풍겨 나온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계란토스트가 아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 준다. '그 시절' 음악을 들을 때 '그 시절' 삶이 생각나듯, 후각 또한 오래된 과거를 깨워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시각 또는 이미지도 그러하다.
지난 주말 오후에 찾은 인천시립박물관은 온통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졌다. 인쇄와 사진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기획전시 '근대가 찍어낸 인천풍경전'이 열리고 있었다. 낯설게 다가선 근대 이미지, 이미지의 다채로운 활용, 일상이 된 근대 이미지….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은 3개 테마로 짜였다. 첫 번째 방에서 사진과 인쇄물에 담긴 인천의 모습을 만났다. 1881년 조선국 어윤중 사진, 개항기 제물포역 선로 등 오래 전 인천의 풍모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코너엔 인천상점광고지와 같은, 자본이 활용한 이미지의 성찬이 펼쳐졌다. 세 번째 방에서 이미지는 비로소 우리 일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애정소설 <월미도>와 잡지 <신세기> 등 인쇄 이미지가 소비되는 양상이 전개됐다.
근대화 과정에서 대중들에겐 소유욕이 내재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물건을 갖고 싶고, 편리하며 세련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다. 그런 인간 심리를 파고든 것이 바로 이미지였다. 이미지로 가득한 인쇄매체는 대량 복제와 유포를 통해 마침내 근대적 의식을 형성했고, '유행'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소비양식을 창출했다. 영상 시대에 이미지는 사진과 인쇄물을 넘어 VR(가상현실)로 확장하며 인류의 새로운 생활패턴을 예고하는 중이다.
"와~ 신기하다!" "아빠 이게 뭐야?" 전시물을 관람하는 동안 아이는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내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전시실 유리창을 만지기도 했다. 눈높이에 맞춰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가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바퀴를 휘휘 돌아 다시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을 나온다. 청량산에서, 딸아이의 재잘거림 같은 산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