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검찰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폭로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주요한 사회이슈로 등장하였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는 형법 개정 및 다양한 특별법의 제정을 통하여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성폭력에 대처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법률적 측면에서만 평가한다면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범죄보다도 적극적·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에도 반영되어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대처 방안이 핵심공약으로 제시됐다.

17대 대선에서는 강간죄 등에서의 친고죄 조항 폐지와 공소시효 연장, 검경 합동 성범죄 전담기구 설치, 강간죄 범위 확대 등이 제시되었다. 18대 대선에서는 성폭력을 4대 사회악 중의 하나로 선정하고 성폭력을 척결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공약이 제시되었다. 19대 대선에서도 이른바 디지털 성폭력을 3대 신종 젠더폭력 중 하나로 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적·정치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범죄는 감소하지 않았다. '범죄백서'에 따르면 1985년과 1995년의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각각 5453건과 6174건이었지만, 2005년과 2015년에는 각각 1만1757건과 3만1063건으로 2000년대 이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범죄 중 성폭력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에는 2.1%였으나, 2013년 2.5%, 2014년 2.9%, 2015년 3.0%로 나타났다.
법률제도 혹은 정치적 구호만으로는 성폭력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적으로 많은 진출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실제 여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즉, 여성은 여전히 어리고 예쁘고 순종적인 존재로서 남성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될 수 없다는 인식과 성폭력 피해자가 되어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안위를 걱정하며 공론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성폭력 범죄의 근절은 기대할 수 없다.

성폭력 범죄는 형법상으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장래의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심각한 범죄이다. 실제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기분이 침체되고 우울증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정실질환을 겪으면서 알코올이나 약물복용, 자살기도 등의 자해행위까지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폭력 범죄에서의 2차 피해는 성폭력 피해로 발생하는 직접적인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이외에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해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되고, 형사사법시스템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추가적인 고통 등을 의미한다.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한 검사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피해자 본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 및 각종 루머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는 언론이 사회의 '관심 과잉(moral panic)'을 부추기고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은 이번 사건에서도 다른 사건과 견주어 성폭력 사건을 더 많은 분량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피해자에 과도하게 주목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2차 피해자를 유발하는 현상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성폭력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가해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중한 처벌이란 단지 중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행한 가해자는 반드시 밝혀내고 합당한 처벌을 부과한다는 의미이다.

서 검사 사건에서도 명명백백하게 사건을 규명함과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지원뿐만 아니라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과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가 제대로 취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