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지난 달에는 중국 하남성의 상구와 안양에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이 두 지역은 중국의 중심부에 있기는 한데. 차편이 많지 않아 찾아가기 좀 불편하다. 상구는 기원전 17세기쯤 중국에서 최초의 왕조국가라고 할 수 있는 상(商)나라의 발상지였다고 하고, 안양은 상나라가 기원전 11세기에 망할 때 마지막 수도였던 곳이다. 상구와 안양은 상 왕조의 시작과 끝으로서 중국 고대문명의 주요 유적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안양을 당시에는 은(殷)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흔히 이때를 은나라라고 하며, 발견 당시에는 그 터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서 '옛터 허(墟)'자를 붙여서 은허(殷墟)라고 일컫는다.
세계 4대 고대문명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이 석기시대를 넘어서 청동기를 사용하였는가와 문자를 고안해 썼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중국에서는 지금의 안양인 은허에서 청동기 도구를 만들고 문자를 고안하여 쓰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 비로소 문명이 실질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하였다고 인정을 받는다. 특히 이때 중국 고대문명이 발원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로서 거북이 배딱지나 소와 같은 큰 동물의 엉치뼈에 글자를 새겼던 갑골문자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갑골문자가 한나라 이후 지금까지 중국이나 우리나라, 일본에서 쓰고 있는 한자(漢字)의 원형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의 갑골문자는 세계 여러 주요 문자 가운데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연원이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2007년 중국 정부는 안양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문자박물관을 지었다.

박물관 2층에는 중국 각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자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우리 한글도 '조선문(朝鮮文)'이라 하여 유리관 안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설명문에 한글이 "우리 중국 조선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문자(我國朝鮮民族使用着…的言語文字)"라고 소개되어 있는 점이 눈에 뜨인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조선족도 중국의 여러 민족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에 한글도 조선족이 쓰고 있는 문자이므로 한자(漢字)와 더불어 중국 문자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의 서문 첫 구절에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國之語音異乎中國)"라고 하시며 문자를 이처럼 지었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 민족과 언어의 연원과 발전 과정이 본디 중국과는 다른데도 이제껏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는 물론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조차 이처럼 중국 문화유산의 하나인양 선전한다.

몇 년 전에는 고대사 분야에서 중국이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와 발해에 이르기까지 만주지역에 있었던 우리 민족의 왕조들을 그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해서 우리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중국 정부는 단지 민간 학자들이 순수하게 연구하는 차원이라고 둘러대며 얼버무렸다가 지금은 흐지부지한 상태이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가 그들의 일부 또는 속국이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제 역사는 물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으로 강하게 맞서 극복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