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대학생인 여자 조카애가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에 올인하고 있다고 한다. 3월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란다. "왜 일본이냐"고 하니 "갈 때마다 일본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벌써 4번째란다. 비행기 표도 미리 끊어두었다. 부산행 KTX보다 싼 13만원짜리다. "일본어는 좀 하냐"고 하니 걱정없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통역 앱이면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배낭 메고 일본 열도로 향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주말 등을 이용해 한 해 30회 이상을 개구리처럼 건너 뛰어 다니는 일본여행 마니아들도 있다. 지난해 일본으로 간 한국인 여행자는 714만명으로 2016년보다 40.3%나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31만명으로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같은 일본 여행 붐을 이끌고 있는 것이 2030세대들이다. 이전 세대들은 축구 한일전에라도 패하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굳이 '반일'이니 '극일'이니 하는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다. 80%가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인도적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그 세대들이다.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위안부·독도 문제'니 '친일파 X들'이니 하는 논란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일본이 좋아서 여행가는 건데 거창한 명분이 필요할까"라는 식이다. 그들 세대답게 그냥 '쿨'하다. ▶지속적인 엔화 약세, 저가 항공노선의 확장…. 일본 여행 붐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이다. 엔화는 최근 900원대로까지 내려와 있다. 그러나 마니아들은 '그냥 좋아서', '친근하게 느껴져서', '가성비가 좋아서'라고들 한다. 일부 생활 물가는 한국보다 오히려 싼 편이다.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손님에 대한 환대)'로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대접받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한동안 가라앉았던 일본내 한류(韓流) 바람도 다시 불고 있다고 한다. 도쿄 신주쿠 코리아타운의 치즈 닭갈비집은 3시간이나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바람을 선도하는 일본의 2030들은 '소레와 소레, 간류와 간류(그건 그거고 한류는 한류)'라는 입장이다. 위안부 합의 파기 갈등 등은 어른들 얘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싫다고 어디 이사갈 수도 없는 한·일관계에 어느샌가 이같은 이중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서로 핏대만 올리는 꼰대들과 맛집에서 만나 우정을 키우는 2030들. 정치인들의 도덕주의적, 애국주의적 위선에 발목 잡인 한일관계도 쿨한 젊은이들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