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정경부장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 가운데 '낭패'라는 게 있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어원을 살펴보면 낭패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그런가 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그런 이유로 두 녀석이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다. 이 두 녀석의 성품을 분석해 보면, 낭은 성질이 흉포하지만 지모(智謀)가 부족하다.
반대로 패는 순한 듯 싶은데도 지모가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엔 패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정치와 경제는 처음부터 낭패처럼 불가분의 관계였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국가경영의 두 수레바퀴 중 하나다. 어느 것 하나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수레는 쓰러지게 된다. 이러한 국가 경영의 두 축 가운데 무엇이 조금이라도 우선해야 하는 것은 오래된 논쟁이다.
정치가 경제를 이끄는냐 경제가 정치를 결정하느냐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문제이다. 정치와 경제는 떼어놓고 무엇이 먼저고 중요하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오늘과 과거를 비춰보면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더 우선이지 판가름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옛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먹을 것이 넉넉해야 인심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후한 인심도 쌀독에 쌀이 차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독이 비어 있다면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소통과 화합이 있다. 화(和)라는 한자를 보면 벼를 뜻하는 화(禾)라는 글자 뒤에 입을 뜻하는 구(口)가 있다. 즉 '입 앞에 먹을 것'이 있어야 세상이 평화롭고 서로 쉽게 합쳐져 어우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누구와 소통하며 어우러져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소통하며 화합해야 한다는 말에 이의는 제기하지 않지만 가슴에는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서구 유럽에서 경제적 결정론자로도 불리는 마르크스는 사회를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보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고 주장했다. 하부구조인 경제가 사회의 원동력이라 본 것이다. 상부구조라는 정치, 법률, 철학, 예술등의 관념과 여러 제도들은 하부구조, 즉 생산관계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와 경제가 불가분의 관계이면서도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의 중요성은 강조됐다. 그러나 요즘 정치가 경제 영역을 침범하면서 정치와 경제 모두 난국을 맞고 있다.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지난 1~2일 강원도 춘천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2018 경제학 공동학술대회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이 자리에 모인 1000여명의 경제학자들은 진보·보수를 떠나 정부의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수요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정책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집중 성토 대상은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빚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16.4% 올렸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7.4%)을 2배 이상 웃도는 급격한 인상폭이다.
영세 사업주는 물론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됐던 저임금 근로자도 고용 감소, 수당 삭감 등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조정(9%→5%),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 같은 추가 대책을 줄지어 내놓고 있지만 혼란은 진정될 기미가 없다. 기업들은 정치적 논리에 의한 정부 경제정책이 기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기업들은 정치권의 지나친 규제나 간섭만 없었다면 기업의 발전은 물론 경제성장률이 1~2%는 더 올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