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논설위원
공교롭게도, 애관극장(이하 애관)과 영화는 같은 해 탄생한다. 1895년 인천엔 공연장 '협률사'가 들어섰다. 현 애관의 전신이다. 같은 해 프랑스에선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세상에 공개한다. 50초짜리 무성영화였다. 애관과 영화가 비로소 만난 때는 1920년대 중반이다. 1924년 애관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인천 최초의 '활동사진 전문관'으로 변신한다. 영화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 세기를 넘긴 지금까지 애관은 현재 '신과 함께', '1987'과 같은 최신 대작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영화는 물론 연극, 레슬링대회, 조봉암 선생의 건준위 인천지부 발족식에 이르기까지 애관은 인천문화의 랜드마크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사진기술 혁명은 영화란 장르를 21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축 반열에 올려 놓았다. 고색창연한 아우라(Aura)를 펑펑 내뿜는 애관과 몽환적 영상으로 가득한 최첨단 CG영화의 만남. 애관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123년을 관통하는 공간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오가는 꿈결 같은 영화를 관람한다는 데 있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세계를 경험하는 셈이다.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멀티플렉스가 상영관을 장악한 시대. 애관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극장주 탁경란 씨의 철학과 투자가 없었다면 문을 닫았어도, 벌써 닫았을 것이었다. 부친 탁상덕 씨에 이어 그가 애관을 인수하면서 인터뷰할 당시, 빈틈없는 미장셴으로 빛나는 스크린 같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극장 매각을 결심했다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공익기관이 아닌 일반 자본이 애관을 사들일 경우 철거나 변형이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인천기상청, 공보관, 애경비누공장과 같은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들이 허망하게 철거되면서 받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다. 정작, 있는 것은 부수면서 대불호텔 복원, 존스톤별장 복원 등을 논하는 것을 보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지자체나 공익기관이 애관을 매입한다면 그 비용은 사라져 버린 옛 건물 복원 비용에 한참 못 미칠 게 분명하다.

어디에 있건 간에, 가족은 존재만으로 행복감을 안겨준다. 애관극장은 그런 가족 같은 존재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쁨과 안도감, 평온한 휴식을 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