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철 문화체육부장
지난해 12월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24년 수능 역사상 처음으로 시험이 1주일 연기되자, '99년생의 수난사(史)'가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1999년생은 9자가 세 개나 겹쳐 '아홉수가 세 개', '세기말 아이' 등으로 불리며 당시 신혼부부들은 20세기의 끝세대보다 21세기의 첫 세대를 선호하며 2000년 후로 출산을 미루는 사회분위기를 겪으며 태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99년생들이 처음 맞은 수난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9년에 신종플루가 전국을 강타해 학생들 사이에 확진 환자가 늘면서 운동회 등 각종 학교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99년생들은 열여섯의 봄을 맞았을 때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전국의 학교에선 수학여행 전면 중단조치가 내려져, 큰 추억거리를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이듬해인 2015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일파만파 확산돼 전국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수학여행은 물론 단체활동도 전면 금지되거나 연기됐고, 지난해 겪은 수능연기로 '수난의 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99년생들이 20년이 채 안된 세월을 사는 동안 겪은 '수난의 이야기'가 SNS를 장식하고 있을 때, 옆에서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58년 개띠'들이었다.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표주자'로 태어난 '58년 개띠'들은 그야말로 영욕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살아왔다.

인구 통계에 따르면 57년생보다 한 해에 10만여명이 더 많은 90만명이 넘게 한꺼번에 태어난 '58년 개띠'들은 초등학고 입학부터 한 반에 70명 안팎으로 바글거리는 '콩나물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고교 평준화 첫 세대로 '뺑뺑이 추첨' 시범대상이었다. 77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선 긴급조치와 10·26을 경험하며 유신정권 몰락과 '5공 탄생'을 지켜봤다. 20대 초반이던 1980년에 누구는 군인으로 다른 누구는 시위대로 광주민주항쟁을 겪었다. 우리나이로 30살이던 1987년에는 '넥타이 부대' 선봉에 섰고, 40살이 되던 1997년에는 IMF외환위기 때문에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직장에서 밀려나 실업의 거리로 내몰렸다.

반면에 '58년 개띠'의 노고가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이 이뤄질 수 있었고,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아울러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취업을 하고, 부동산 개발 덕분에 내집 마련의 꿈도 이루고 중산층에도 무난하게 합류했다.

양력으로 한 달 뒤 2월15일은 음력으로 닭의 해인 정유(丁酉)년의 마지막 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정확하게 60년 전에 태어난 무술(戊戌)년 생, 즉 '58년 개띠'가 태어난 해로 다시 돌아가는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 되는 진정한 한 해가 시작된다.
나이 60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정년퇴직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당연히 '쪽수'가 많은 '58년 개띠'에게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는 셈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제도의 최초 실험대상이 되기도 했던 '58년 개띠'는 현재 노인 인구보다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백세 시대'를 바라보는 노인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58년 개띠'는 오롯이 자신들만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고, 뒤이어 오는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공직자 '58년 개띠' 선배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박정희는 그토록 꿈꾸던 '종신 대통령'을 이룬 셈이야. 왜냐하면 죽을 때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지."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무술년(戊戌年)은 무(戊)자에 황금색의 뜻이 담겨 있어 '황금 개띠의 해'라고 한다. 색깔을 덧씌워도 그들의 삶에 큰 보상이 될리 없겠지만 '황금'이라도 붙여서 '58년 개띠'들의 노고를 달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배들은 받쳐주고 떠받들고, 후배들은 보살피고 끌어주던 '58년 개띠'에게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