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걷더라도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로 될지니

서산대사가 읊어 유명한 오언절구(五言絶句)다. 어떤 말과 행동도 신중하고 올바르게 해야 후배들이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시(詩)다.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해 임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먼저 나아가야 하는 선각자의 심경과 비장함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 시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새해가 밝으면서 문득 이 시를 떠올린다. 이 겨울 눈 내린 벌판을 걸어가는 선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이 시처럼 행동거지를 올바로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면 되는데, 그것을 못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국민이 원하는 것에는 누구보다 앞장서 나가고, 국민이 꺼리는 데에는 나서지 않는 게 정치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6월이면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시장을 비롯해 군수·구청장·시·군·구의원을 뽑아야 하는데, 당최 마땅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유권자들 말을 들으면, 대부분 "정말 고민스럽다"고 밝힌다. '그 나물에 그 밥'인 탓인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군이 줄을 서고 세운다. 언필칭 다들 "나 잘났네, 나요 나" 식이다. 그렇게 잘난 이들만 있다면야 오죽 좋겠냐마는 현실은 되레 부정적이다. 많은 유권자가 "그 사람들은 영 틀려 먹었어"라며 퇴짜를 놓기 일쑤다. 그래도 누구를 찍을지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참에 "과연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를 떠올려 본다. 아울러 우리 정치인들은 "좋은 정치를 꿈 꾸고는 있나"라고 반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들춰 봐도 '좋은 정치'를 하는 이들이 드물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동안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등의 당선자들이 생각만큼 해내지 못했거나, 일처리를 매끄럽게 하지 않았거나, 주민과의 약속을 저버렸거나 등 때문일 터이다. 정치인에 대한 상실감이 이렇게 큰 데도 어김없이 선거일은 다가오고, 또 누군가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쯤 해서 선인들의 말을 더 들어보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아주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아담 셰보르스키는 "시민들이 뽑은 통치자를 직접 해고할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라고 했다. 그렇다. 종국에는 시민의 힘으로 국가를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국가 권력의 사유화, 통치자의 자의적 지배에 대해 국민들은 결국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잘못된 정치적 선택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아로새긴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출발선에 서 있다. 다시 바꾸고 변혁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민의 힘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 정치의 계절에, 그런 국민과 정치에 대해 웅숭 깊은 이해와 사려의 시선을 가다듬었으면 싶다.

자유·민주주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실이다. 잘못을 꾸준히 변혁·변화시켜야만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참세상'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말과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백번 옳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 그러려면 사적 이해관계를 완전히 벗어나 공공선에만 헌신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맡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정치가의 덕목이다. 그리고 참여야말로 자유와 민주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인생은 짧지만 선거는 계절을 가로질러 줄기차게 오기 마련이다. 선거를 통해 정치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이들은 어서 퇴장했으면 싶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정치인들이 정말 많다. 이들은 그저 하는 일 없이 돈만 축내는 꼴불견이다. 그런 인간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나온다면 본때를 보여주자. 함께 참여하고 발전하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정치의 몫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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