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천 지역부국장
엊그제 경기도 부천시의회가 예산결산특위에서 삭감하기로 한 예산이 본회의에서 삭감되지 않은 채 원안대로 통과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시의회 망신치고 이런 망신도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시의회 사무처 직원이 삭감 예산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해당 예산이 전액 삭감된 사실을 빠뜨렸다는 게 그 사유다. 하지만 누가 사무처 직원의 실수 탓으로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책임은 의원들에게 있다고 본다.
1차적으로는 삭감을 주장해 통과시킨 예결위에서 제대로 삭감조서를 챙기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2차적으로는 의장을 비롯해 모든 의원이 예산안 의결과정에서 바로잡지 못하고 통과시켰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동안 의정활동이 얼마나 허술하고 무책임하게 공전해 왔는지를 보여준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삭감하기로 한 내용은 지난 7일 제224회 정례회예결특위가 주장해온 자유총연맹 부천시지회의 내년도 운영비와 사업비 예산 7700여만원이다.
자유총연맹 부천시지회가 올해 지나치게 본연의 임무를 떠나 정치색을 드러냈다는 이유에서 삭감하기로 했다. 예결위원 9명 가운데 5명이 예산 삭감에 찬성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러나 닷새 후 12일 열린 제224회 정례회 3차 본회의에 상정된 '2018년도 일반·특별회계 예산안'에 이 단체의 운영비와 사업비가 고스란히 포함됐고 결국 통과했다.

전체 의원 28명 중 1명만이라도 점검을 했더라면 상황을 달라졌을 텐데, 어처구니가 없다. 놀고 먹는 듯한 지방의원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예결위원 9명은 물론 시의회 전체 의원과 사무처도 이 사실을 본회의 통과 때까지 파악하지 못했다니, 실로 망연자실할 뿐이다.

'삭감이 다시 원안'으로 뒤집힌 눈먼 의원들의 얼치기 행태가 부천시의회의 현주소다.
그뿐인가. 부천시의원들의 조례발의 현황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제7대 의원 발의 건수 및 조례 현황에서 의원들은 이 기간 총 41건의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 28명으로 구성된 시의회에서 의원 1명당 평균 1.5건을 발의한 셈이다. 3년6개월간 1인 평균 1.5건은 1년에 0.42건 꼴이다. 더구나 이 중 21%에 해당하는 6명은 아예 한 건도 발의하지 않았다.

연봉 4800만원씩 의정비를 지급받는 기초의원들이 일한 성적표가 이렇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는 성실하고 청빈한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 유권자의 중대한 몫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