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촬영한 거리풍경 6점
▲ 개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인천역'의 전경. 1946년쯤 촬영된 장면으로 당꼬바지에 배낭을 멘 채 레닌 모자를 쓴 사람과 흰 한복차림의 여인네, 신식 양복을 입은 하이칼라 신사 등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지금의 60년대식 '간이역'보다 차분한 고전적인 미가 돋보였던 인천역이었다.
인천시와 한국철도공사가 현 '인천역' 건물의 전면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복합역사(複合驛舍)'를 지을 계획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최근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근대 인천역의 모습을 담은 원본 사진이 발굴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본보가 '인천도호부 관아' 사진을 발굴 보도(2017년 6월2일자 1·3면)한 이후 연이어 찾아낸 것으로 귀중한 생활사 자료라는 평가다.

인천역은 그동안 일본 측 자료인 '일로전쟁실기'나 '인천부사' 등에 선명하지 못한 인쇄물 사진이 있었으며, 실물 원본 사진은 희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보 애독자가 제공한 이 사진의 촬영 시기는 1946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인천역은 1960년대 지어졌는데, 이번 발굴 사진은 근대 인천역의 모습을 뚜렷이 알 수 있는 원본 사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인천역 전경과 함께 발굴된 6장의 사진 중 '축현초등학교' 전경 상하단의 여백에 영문으로 "OUR LIVING QUARTERS, I LIVE IN BUILDING BEHIND THIS ONE(우리가 지내던 사령부. 나는 이 건물 뒤 한 곳에서 살았다)"이라고 쓴 것이 그 단서다.

당시 인천에서 발간되던 신문 '대중일보'도 이를 뒷받침하듯, 1947년 3월 11일자 기사에서 "미군이 1946년 9월 개교한 축현학교를 징발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송학동 유치원과 창영, 송림, 신흥 세 학교에 분산돼 있었으나 지난 3일부터 본교로 돌아와 수업을 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사진들은 광복 직후 축현초등학교에 주둔했던 미군 사령부 소속 병사가 시내 곳곳을 다니며 촬영한 것의 일부로 보이며, '인천역' 사진에서 6·25전쟁 당시 포격으로 일부 파손되기 전까지 건물이 온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홍예문에서 신포동 바닷가를 바라본 전경, 청관(淸館, 현 차이나타운)을 지나는 사람들과 우마차, 길모퉁이의 옛 우체통, 아기를 업은 노인의 뒷모습, 민속사적인 측면에서 보기 어려웠던 인천의 상여 행렬 등이 포함돼 있다.

인천재능대 손장원 교수는 "근대에 세워진 인천역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 원본 사진이다. 인천역 모습은 그동안 대부분 인쇄물 사진이었다"며 "인천의 정체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근대 인천의 중요 관문이었던 근대 인천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지역사 사료 수집가이기도 한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은 "광복 직후의 사회적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생활사 자료다. 수준 높은 지역사 연구를 위해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사료 발굴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경인철도는 1899년 9월18일 개통된 한국 최초의 철도로, 인천역-축현역-우각동역-부평역-소사역-오류역-노량진역 등 7개 역 33.2㎞ 구간을 1시간30분에 달렸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