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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 피리>
부평구 십정동 백운공원에 한하운 시인의 <보리 피리>시비를 세운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몇 년 전부터 인천문화재단과 부평구에서 한하운 시인의 전집을 간행하고 삶을 재조명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1940년대를 대표하는 한하운 시인은 문둥병이라 불렸던 한센병에 걸렸을 때, 부평에 한센병 환자 요양소를 설립해 운영하여 한센인 구제 사업을 벌이다가 타계하셨다.

얼마 전 심포지엄에서 고은 시인은 "중학생 시절 하교하면서 우연히 주은 <한하운 시초>를 읽고 그처럼 처절한 시 몇 편을 쓰고 죽겠다고 다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할 정도로 한하운 시인은 살아 있는 생활의 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처절히 노래하는 시를 썼다.

문학도를 꿈꾸던 열일곱 나이에 불어 닥친 질병이었다. 그것도 해괴한 소문이 돌던 문둥병이었다. 병으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은 <보리 피리>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인간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몇 년 전 부평구에서는 북구도서관 옆 신트리공원에 박영근 시인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시비를 세운 바 있다. 그때, 구청장이 모인 내외분들에게 '앞으로는 저희가 시인을 잘 모시겠습니다' 라는 취지의 인사를 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한하운 시인이 명동 술집에서 시를 팔며 구걸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예술가에게 삶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간다.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고은 시인을 삼고초려로 모셔왔던 수원과 시인이 결국 수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박영근 시인의 시비를 세우고, 한하운 시인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는 부평구가 그래서 새삼 고맙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