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위 '새빨간 거짓말' … 범인은 나, 아니면 당신
13명의 완벽한 알리바이
잔혹하고도 슬픈 반전

조니뎁·미셸 등 명배우들
섬세함으로 심리극 잇고
시대적 소품 완성도 더해



"이 기차엔 악마가 타고 있다."

세기의 추리가 다시 시작된다. '추리 소설계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을 영화화 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1974년 영화화된 데 이어 올 겨울 또 다시 스크린에 등장한다.
지난 20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영국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고급 열차 '오리엔트 특급'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호화로운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는 세계적인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가 타고 있다. 폭설로 열차가 멈춘 사이, 한 승객이 살해당하고 밀폐된 공간의 탑승객 13명은 용의선상에 오른다.

교수, 집사, 공작부인과 하녀, 가정교사, 선교사, 미망인, 세일즈맨과 의사, 백작 부부와 비서 그리고 갱스터. 범인은 나 아니면 당신.


틀에 벗어난 것을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하는 예리한 관찰력의 소유자, 포와로는 즉각 수사에 나서지만 알파벳 'H'가 쓰인 손수건과 '스트롱의 피가 묻었으니 너도 죽을 것이다'라는 알 수 없는 경고가 적힌 검게 그을린 쪽지 외엔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라틴계 남자가 아닐까요?", "어젯밤 살인범이 내 방에 들어왔었어요", "침묵이 불법은 아니잖아요", "내가 왜 돈줄을 죽이겠어요?"

13명의 용의자들 모두 각자의 사정과 완벽한 알리바이를 안고 있고, 그들의 한 마디가 켜켜이 쌓여 포와로를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거짓말 해도 신과 포와르, 둘은 알 것이다." 포와로는 곧 사건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줄기를 찾아낸다. 그 줄기의 가지는 무수하게 뻗어 있어 좀처럼 알아채기 어렵지만, 알아챈 순간 잔혹하고도 눈물겨운 반전이 펼쳐져 이내 극은 추리에서 드라마로 장르의 태세 전환에 들어간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관람포인트는 추리 과정보다는 용의자들의 거짓말과 퍼즐을 맞춰가며 그들의 표정을 감상하는 데 있다. 침이 바짝 마르는 긴장감과 묘한 심리극을 더욱더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명품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해 눈을 즐겁게 한다.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미셸 파이퍼, 주디 덴치, 윌렘 대포 등 미국 아카데미 수상 및 노미네이트 합계 22회에 빛나는 배우들이 환상적인 앙상블을 만든다. 특히 감독 겸 탐정 에르큘 포와로 역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는 외모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동작과 말투, 특유의 억양까지 연구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과 아득히 펼쳐진 설원을 담은 감각적인 영상미는 시선을 압도한다.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을 가져다 놓은 듯한 세트장의 비주얼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열차 안에 장식된 고급진 은 식기와 목재, 가죽, 고급 샴페인 등의 아름답고도 정교한 소품부터 그 시대의 오리지널 원단을 복제해 만든 배우들의 의상은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단서를 찾아 범인을 쫓는 추리극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쏠쏠한 재미를 느낄 듯 싶다.

크리스티의 원작을 읽고 작품을 본다면 그 틈에서 피어난 또 다른 재미와 감동까지 두 배로 느낄 수도 있겠다.

오는 29일 개봉, 114분, 12세 관람가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