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필자는 아파트 문 옆에 한동안 문패(門牌)를 달아 놓았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 때 만들었던 나무 문패를 이삿짐 꾸러미에서 발견하고 재미 삼아 걸어놓은 것이었다.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던 이웃집 아줌마가 어느 날 필자의 처를 "동현 엄마"라고 자연스럽게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문패의 이름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문패는 집의 이름표다. 호주(戶主) 성명, 가족(동거인) 이름, 주소 등을 적는다. 문패는 집을 가졌다는 상징이자 증표였다. 문패를 달기 위해서는 대문이 있어야 하고 그곳에 이름 석 자를 걸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집을 가졌다는 것을 뜻했다. 집을 장만한 날, 우리네 아버지들은 문기둥에 커다란 문패부터 달으시고 괜한 큰 기침을 하셨다. 세 들어 사는 아랫방 세입자는 문패를 달수 없었다. 편지를 받으려면 집주인 아무개 씨한테 허락을 받아 '아무개 씨방 ○○○'라고 적어야 했다.

6·25 전쟁 후 체신부는 우편배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문패달기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치안국은 문패를 달지 않으면 법규에 의해 엄벌에 처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하꼬방집이나 천막집도 예외가 없었다. 문맹률이 높았던 1960년대에는 행상형 문패 장수가 있었다. 먹물께나 먹은 사람은 이 마을 저 동네를 다니며 한자나 한글 이름을 써주고 즉석에서 문패를 만들어 줬다. 한때 문패가 수시로 도난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아들이 있는 집의 문패를 떼어다가 그걸 삶은 물에 밥을 지어 먹이면 입시에 합격한다는 황당한 미신이 돌았다.

지금도 원도심 골목에서는 문패를 종종 볼 수 있다. 문패는 얼굴이다. 집주인이 늙으면 문패도 늙는다. 시간이 흐르면 또렷했던 이름 석 자는 비바람에 씻겨나가 희미해진다. 사람이 죽으면 문패부터 뗐다. 그 위에 새겨졌던 이름은 바로 묘비명이 되었다. 예전엔 문패 덕분에 그래도 친구 아버지의 함자(銜字) 정도는 알고 지냈다. 이제는 앞집에 김 씨가 사는지 이 씨가 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이름 없는 익명(匿名)의 세상이 되었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