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바야흐로 '지방분권'이 화두로 떠오른 시대다. 지방분권은 말 그대로 지방으로 권력을 나누는 일이다. 지방분권은 그동안 중앙으로 권력이 쏠리면서 벌어진 각종 폐해를 막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 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26일 여수 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명실상부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고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 자치권을 헌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말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지금 전국 곳곳에선 지방분권과 관련한 논의들이 활발하다. 지방분권을 이룰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주 많다. 지역 균형발전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지방분권화 필요성에 찬성을 한다. 이제 지방자치를 확대한다는 방향은 정해졌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 구현은 향후 개헌 과정에서 나오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 관할권 인천 이관 문제를 들여다 보면, '지방분권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분권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역에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더욱이 그것이 많은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가공기업인 SL공사를 인천시로 넘기는 일은 매립 연장과 관련한 '약속'인데도 이를 지키지 않는 걸 어떻게 이해할까. 인천시와 서울시, 경기도, 환경부는 2015년 매립기간을 연장하기로 하고, 대신 인천시민들의 피해를 보상한다며 각종 지원 조치를 내걸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SL공사의 인천 이관이었다. 그런데도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 인천시는 2015년 6월28일 '수도권매립지 4자협의체 합의'를 이룬 후 매립 연장의 불가피성과 시민 고통의 보상 차원에서 '선제적 조치'를 했다. 선제적 조치란 수도권매립지 3-1공구 103만㎡ 부지를 사용하기 위해 유정복 인천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윤성규 환경부 장관 등이 약속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선결조치 이행을 전제로 공사의 관할권을 환경부에서 인천시로 이관한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4자 합의 발표 후 지금까지 SL공사의 인천 이관은 추진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먼저 SL공사 관련 법 폐지 권한을 틀어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이유로 들 수 있다. 매년 적자가 수백억원씩 쌓이는 국가공기업을 지자체에 넘기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SL공사측도 지자체엔 운영 전문성이 부족해 무리라고 거든다. 여당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적자 기관인 SL공사를 인천시에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4자협의체는 매립지 사용 연장만 하고 끝났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인천지역 사회에서는 "인천 땅에 서울·경기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반발심을 키운다.

우선 적자 부분을 따져 보자. 몇몇 국회의원은 "매년 적자가 수백억원씩 쌓이는 국가공기업을 지자체에 넘기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SL공사의 적자를 이유로 국가에서 지자체로 넘기지 않는 것은 4자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선을 긋는다. 시에 따르면 SL공사가 작년에 18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만큼 재정 적자 우려는 크지 않다. 수도권매립지의 적자·흑자는 부수적 산술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매립지의 인천 이관이라는 '큰 그림'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SL공사가 추후 적자를 내면, 4자 합의 정신에 따라 적자부분을 3개 시·도가 나눠 충당하면 되는 일이다. 적자 해결 방법으로는 반입수수료 인상 등의 방안도 있다. 이런데도 매립지공사를 인천으로 넘기지 않는 이유는 특정 정치세력이 개입해 실리를 따지기 때문이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게 도리이거늘 정파 이익을 계산해 이를 뒤집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방해공작'이다. 지방분권의 경우 특정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들을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먼저 정치권의 자기희생과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제도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사실 SL공사의 인천 이관은 30여 년간 쓰레기로 인해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과 고통을 안겨준 '댓가'이다. 인천시는 시민들이 오랫동안 수도권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를 떠안으며 피해를 감내한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4자 합의를 이뤘으면 일단 인천시에 맡기면 될 일이다. 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 SL공사의 인천 이관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고, 장마 무서워 호박을 못 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