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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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됐던 일들이 정권이 바뀌니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있어 놀랍기만 하다. 이전에야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서슬 퍼런 정부였으니, 살기 위해 취한 행동이라 동정이라도 받았을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정권이 탄생했는데도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행동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독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권력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결정된 우표발행이 취소되고, 공사 중인 원전건설이 중지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한국사회는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음을 느낀다.

결정에 참여하는 자들이 늘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에 따라 결정한 사항은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간 정부 영향 아래에 있는 많은 위원회나 이사회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그들의 결정에 늘 잡음이 있어 왔다. 한번 결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늘 균형 있는 인적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정과정에 부정적 여론이 많아 실제로 내부 저항이 있었던 사안이라면,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정상으로 돌리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적폐를 청산하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탄생했는데, 그런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정해진 결정을 번복하는 행태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본인들이 소신을 갖고 결정한 일이라면 당당하게 지켜나가야 하거늘, 그간의 절차에 하자라도 있었다는 듯이 이를 하루 아침에 뒤집고 말았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바꾸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전 정부에서의 행동이 정말 부당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라 양심선언이라도 하듯 결정을 번복해야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결정과 번복이 압력에 굴해 했던 것이라면 그때도 잘못된 결정이었고, 그렇지 않고 현 정권의 등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이 또한 잘못된 결정이다.

결정에 관여한 자들이 정상적 법절차에 따라 내린 자신들의 결정을 새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바꾼 것이라면, 이는 새 정부를 예전과 같은 비민주적 정권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어쨌든 일련의 일들은 민주정권이 탄생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정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고를 불식시키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정부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더디더라도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해결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었다. 민주정부 실패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주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 같다. 힘이 있을 때 힘이 없어질 때를 생각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 답이다. 모든 국민을 언제까지나 자기편으로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를 야기한 위원회와 이사회는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인의 자존심을 훼손시켰다. 정권의 눈에 들어야 자리보전이 되거나 뭔가 한자리 할 수 있었던 그간의 불공정한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르지만, 사정이 바뀌면 소신을 굽히고 언제라도 현실에 타협할 수 있는 자들로는 한국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피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가 이기적 기회주의의 장으로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도 적폐를 청산하며 선을 행하겠다고 섣부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지금의 결정이 지금은 최선처럼 보여도 머지않은 미래에 터무니없는 오판으로 판명날 수도 있는 일이니, 새로운 결정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특히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관행을 깨는 일에는 더욱더 그렇다.

국민이 준 권력이라 하여 국민의 여론만 등에 업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면서 여론을 경청해야 할 사안도 있는 것이고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내야 할 사안도 있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의 발전으로 급변하는 사회를 경험하고 있으면서, 어찌 변할지도 모를 미래를 단정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일은 현명할 수 없다.

섣부른 결정은 국가 경쟁력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 대립만 보이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서 재차 바꿔야할 사안이 되기라도 한다면 국가를 또 다시 혼란에 빠트릴 수 있어 깊은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