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씨가 1960년대에 불러 유행시킨 일명 '사이다 송'.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아마도 지금 랩의 원조격이 아닐 듯싶다. 특유의 만담 노래 가락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단 시작을 하고 목표를 이루려면 그 일을 할 준비를 알차게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인천 앞바다에다 '사이다 송'을 붙였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사이다를 처음 판매한 곳이 일제 때 인천이다. 사이다 역사(歷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인천인 셈이다. 요즘은 사이다를 얼마든지 사서 마실 수 있지만 일제시대만 해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인천에서 사이다가 첫 선을 보였을 당시 인천 앞 바다에 그 병이 둥둥 떠다닐(?) 만큼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전국을 통틀어 그 제조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따라올 곳이 없었다. 인천부사(仁川府史)에 따르면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가 인천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 '인천탄산수제조소'라는 사이다 공장을 차려서 국내 첫 사이다인 '별표(星印) 사이다'를 팔기 시작했다. 빙수 밖에 없던 여름철에 시원한 마실거리를 내보였다. 여러 책에선 '병은 그대로 내놓고 3전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사이다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해 맛이 상쾌하고 산뜻해 인기를 끌었다. 식혜와 수정과 등을 음료로 여겼던 당시 사이다를 한 번 들이킨 이들은 곧 '톡 쏘는 맛'에 매료됐다." 1910년 5월에는 같은 동네에서 '마라무네제조소'가 창업해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를 출시할 정도로 사이다는 초창기부터 인기를 끌었다. 1916년에는 경인선 기차에 '별표 사이다' 광고도 실렸다. 당시 첨단 교통수단인 기차에 광고를 붙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사이다의 인기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오늘날 인천에 남은 사이다 공장은 없지만, 인천시는 짜장면·쫄면 등과 함께 사이다를 인천에서 시작된 명물로 알리는 등 홍보를 강화한다.
이렇게 사이다에 얽힌 일화를 꺼내는 까닭이 있다. 인구 300만의 '거대 도시'이긴 한데, 인천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과연 이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었을까. 서울과 부산 다음으로 인구는 많은데, 외형적으로도 그럴 만한가. 물론 인천이 이렇듯 성장한 데에는 각계 시민들의 노고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저절로 크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인천인들에게 인천이 커온 이유를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행정과 정치 등을 두루 다루는 이들이 과연 인천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느냐를 묻는다. 행정의 부정·비리 등 적폐 논란에서부터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까지 거론한다. 여기엔 '오피니언 리더'로 자처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불거진 송도 6·8공구 특혜 논란이다. 인천시는 업자들에게 땅을 헐값에 매각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낭비했다. 천문학적인 그 돈은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다. 업자들의 배만 두둑히 불려준 꼴이다. 이런 과정에서 갖가지 비리가 끼어들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점점 더 키운다. 그런데도 책임을 지려는 이들은 없다. 모두 발뺌을 하며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하다.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동안 인천이 자라오는 동안 있었던 빙산의 일각이다. 시시콜콜하게 다 말하기엔 허락된 지면이 너무 짧다.

외지인들의 평가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매력적인' 도시인가. 이들은 대체로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항구도시인데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고, 공장도시라는 '잿빛 이미지'가 세다고 한다. 어딘가 모르게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보인다고 한다. 대개 부정적인 반응이다. 인천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인천에 대해 듣는 것은 유의미하다.

인천의 목표는 시의 슬로건대로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이다. 이런 목표에 닿으려면 인천시는 정말 각고의 노력을 펼쳐야 한다. 정치권도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아무리 많이 떴으면 뭘 하는가. 컵이 없으면 못 마시는 것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무엇을 할 때 철저한 준비 과정과 검증 작업을 통해서만 인천은 비로소 '인천다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인천에서 만든 국내 최초의 사이다만 홍보하지 말고, '사이다 송' 너머의 뜻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