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저녁 6시 무렵이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늦게까지 열려 있는 몇몇 가게도 있지만 극히 일부였다. 편의점은 찾아보기 어렵고 마트도 6시면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일찍 닫는 대신 오전 8시 무렵이면 마트가 문을 열기 때문에 며칠 치 장을 봐두면 될 일이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6시 이전에 사면 된다. 익숙함의 문제일 뿐이지 대단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일은 아니다.

6시부터 문 닫고 뭐하나? 다들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쉴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많은 미술관이 연장 운영을 하여 7시 혹은 9시까지 열려 있으며, 각종 공연이 저녁 시간에 잡혀 있다. 퇴근하고 밥 먹고 할 일이라고는 미술관에 가거나 음악회에 가는 일 정도일 것이다.


마트에서 일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마트에서 일을 할 때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10시간 정도 일했다. 보통 밤 10시에 퇴근했다. 명절이 돌아오면 더 늦게 퇴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일을 오래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이었기에 그 일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엄마는 아직도 마트에서 일을 한다. 명절이 돌아오고 있으니 아마 물건을 배열하느라 며칠은 자정이 넘도록 일을 할 것이다.

일한 만큼 돈 주는 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만큼에 멈추어선 안 된다고 대답하겠다. '노동의 대가'가, 사람다운 삶의 질적 차원을 훼손하면서까지 시급을 받는 것이 옳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적당히 피곤한 노동을 하고 돌아와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노력에 기댈 일이 아님은 명백하다. 개인이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에 기대지 않을 정도로 정부로부터 보장되는 기초적 생활 보조금, 복지 차원의 수입이 필요할 것이다.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보이는 것에 익숙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없는 삶이라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