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개봉되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은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660년의 황산벌 전투를 코믹하게 재현하고 있다.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의자왕은 계백 장군과 5000 결사대를 황산벌로 보내 신라와 당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지연전술을 펴게 한다. 당에게 식량을 보급해야 하는 5만의 신라군은 속전속결을 원하지만, 이들을 최대한 지연시켜야 하는 백제군은 길목에 목책을 만들어 진격을 저지할 뿐 전투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참다못한 신라군은 욕쟁이들을 보내 백제군을 도발하는 심리전을 편다.
그러자 백제는 벌교와 보성 출신 병사들을 내세워 신라군과는 차원이 다른 욕설을 구사한다. 감독은 욕설과 비방이 오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한 끼를 먹어도 반찬이 사십 가지가 넘어"란 식의 유머를 적절히 배합한다. 우리가 영화 '황산벌'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건이 무려 1300여년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역사가 기록하지 않았을 법한 대목을 드러내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역사 자체를 왜곡할 수는 없다.
역사를 아는 관객이라면 계백과 5000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 계백의 머리를 칼로 내리칠 때, 그의 뇌리를 스쳤던 아내의 울부짖음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이 영화의 백미에 해당한다. 정치의 대의명분이나 남정네들의 비장함을 넘어서는 생존의 의지 말이다. 전쟁에서 패한 의자왕과 왕족, 귀족과 백성 1만3000여명이 당으로 끌려간다. 비록 훗날 나당전쟁의 결과로 신라는 당을 축출하지만, 외세를 끌어들인 전쟁의 후유증은 고려 건국까지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황산벌'은 비극적인 코미디이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 아무리 우스워도 웃을 수 없는 우리의 일인 것처럼.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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