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발굴·관계조사서 비롯
'강당' 명칭 99년 보수가 계기
최근 '전사청' 언급문헌 발굴
제향시설 역사적 증명 주목
▲ 1932년 일제강점기, 경기도지사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앞으로 보낸 '숭렬전 수리내역 청구' 내용. 전사청이란 명칭이 언급(붉은색 표시)돼 있다. /사진제공=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한반도 역대 시조를 모신 8개 사당 중 하나인 '숭렬전(崇烈殿)' 제향시설의 정확한 명칭이 19년째 밝혀지지 않으면서 수수께끼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인천일보 9월19일자 19면>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연구진들은 최근 시설 명칭이 언급된 문헌을 찾아냈고, 정밀연구도 지속할 계획이여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광주시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임금인 온조왕(溫祚王)을 기리기 위해 1603년 남한산성 내 건립된 숭렬전 제향시설은 본전과 부전, 협문, 외삼문 등을 포함하고 있다.

본전 정면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중앙에 대청(大廳), 양측에 방을 각각 둔 하나의 시설이 있다. 시설 규모로만 비교하면 본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시설의 명칭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시설은 역사적 근거와 무관하게 최근까지 '강당'이란 명칭으로 소개돼왔다.

하지만 2009년 남한산성 관리권이 경기도로 넘어오면서 연구를 맞게 된 연구원들은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강당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분석하고 있다.

도 세계유산센터는 2011년부터 6년간 문헌고증을 통해 명칭을 찾는 조사에 나섰고,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이다. 최근 문화재청도 숭렬전 시설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설이 강당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1999년 훼손된 시설이 재건립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에 앞서 1998년 4월 건국대학교 박물관은 숭렬전 일대에 대한 발굴 등 관계조사를 벌인 뒤 보고서를 작성, 문건 안에 '강당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당시 이 시설은 훼손(일제강점기 추정)돼 아예 없었고, 초석 등만 남아있었다.

이후 남한산성 전반적 시설의 관리주체였던 광주시는 건대 측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숭렬전 강당 복원공사'라는 용역을 발주, 복원 이후 이 시설은 자연스레 강당으로 칭해졌다.

그런데 최근 도 세계유산센터 연구진은 애초 강당이란 시설이 '전사청(典祀廳)'이라 불렸을 가능성이 있는 문헌을 발견했다. 1932년 일제강점기 때 경기도지사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앞으로 보낸 '숭렬전 수리내역 청구' 내용을 보면 전사청 명칭이 언급됐음이 확인된다.

전사청은 전사관(典祀官)이 제사를 준비하고 점검하는 건물로, 국내 '팔전(八殿)'인 숭덕전(신라·박혁거세왕), 숭선전(가락·수로왕), 숭의전(고려·태조왕) 등 사당에 하나씩 존재해있다.

하지만 연구진이 타 사당 사례조사를 한 결과, 전사청은 숭렬전의 미확인 시설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본전 정면에 위치하지도 않았다.

결국 시설 명칭 찾기가 다시 오리무중에 빠지자 도 세계유산센터는 임시적으로 강당에서 '재실(齋室)'로 명명한 상태다. 재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도 세계유산센터 관계자는 "소중한 세계유산인 숭렬전 제향시설 보전의 측면에서 명칭을 정리하려 했지만, 관련 역사자료가 많이 발굴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며 "일단 강당이란 명칭에서 재실로 명명한 뒤 추가 문헌고증을 통해 실제명칭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